한양 기생 상림춘은 성종 말기부터 궁중에 출입했으며, 연산군 때도 명기로서 어전에서 왕의 마음을 흡족시켰다. 상림춘은 호방한 일면이 있어, 당대의 문장가들과 곧잘 교류했다. 그 중에도 굴 잘하던 삼괴당 신종호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성종 중기에 신종호가 뒷골목 길을 걷고 있는데 웬 집에서 한 여성이 뛰어나왔다. “아유, 신 참판 영감님, 홀로 지나가십니까? 잠깐만 들르세요.” 자세히 보니 전에 내연 때 한번 본 듯한 여인이었다. “누구의 집인데 그러느냐?” “천기 상림춘의 집이랍니다.” “옳아, 거문고를 잘 타는 상림춘이로구나.” 활달한 신종호는 즉시 그 집으로 들어갔다. 10여 명의 기녀들이 상림춘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있었다. 모두 일어나 신종호를 환영했다. 글 잘하는 신종호는 미녀를 보자 마음이 활달해졌다. 좌석을 벌이고 상림춘이 거문고를 뜯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신종호는 즐겁게 놀았다. 그날 이후부터 신종호는 상림춘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밤이 되어 한양의 걸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면 그녀의 거문고 소리는 더욱 가늘고 길게 울려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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