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태봉승 김식과 중서사인 장성이 정사와 부사로서 조선에 들어왔다. 특히 정사 김식은 성이 우리나라에서 흔한 김씨라 하여 모두 친밀감을 가졌다. 그는 시도 잘 짓고 더욱이 글씨와 그림을 잘해 평이 좋았다. 이때는 제천정에서 두 사신을 청해 환영연을 열었다. 우리 쪽의 접대관으로 글 잘하는 사람만 뽑아 접대케 했는데 신숙주, 이승소, 김복창, 서거정, 김수온 등 당대의 명인들이 선발됐다. 이 자리에서는 시를 읊으며 노래까지 불렀다. 이와 동시에 기녀 10여명이 그 앞에서 춤과 청아한 목소리로 흥을 돋웠다. 김식이 옆에 있는 접대관에게 물었었다. “귀국에 자동선이란 명기가 있다 하던데 누구요?” 이날 자동선은 영천군이 내놓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접대관이 임시통변으로 아무 기생이나 가리키며“저기 있는 저 아잉ㄹ시다”하고 대주었다. 김식은 한참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지. 전번에 왔던 장 학사가 말하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던데. 여기는 그런 기녀는 없소?” “아니오. 저 아이가 맞소.” “아무래도 못 믿겠소. 장 학사의 눈이 보통 눈이 아닌데. 어서 찾아오시오.” “자동선은 기녀를 그만두었다오.” “그럼 있기는 있구려. 역시 장 학사의 말이 맞는군. 좀 데려오구려.” 명나라의 사신이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자동선을 찾아오기로했다. “그럼 술자리는 잠시 중단하오. 어서 시나 읊읍시다.” “시보다도 칙사의 그림 솜씨가 좋으니 그림을 그려주시오.” “그렇게합시다.” 김식은 신이 나서 그림을 그렸다. 기녀들까지 그림을 그려달라고 종이를 내놓았다. 김식은 한 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급할 때면 두 손으로 그린다. 수십 장을 순식간에 그렸다. 아무리 빨라도 모두 잘되었다. 그야말로 신품이다. “자동선 들어오오.” 길게 뽑는 소리에 김식은 그림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자동선은 천정으로 들어와 김식 앞에서 절했다. “옳지. 이제야 선녀를 구경하는구나. 장 학사가 바로 보았어.” 김식은 무릎까지 치며 찬양했다. “칙사님, 소녀에게도 그림 한 장 그려주시오.” 자동선이 흰 비단을 내놓았다. 김식은 “하오하오” 소리를 연발하며 먹을 다시 갈아 일필휘지했다. 한강의 경치가 그대로 종이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제천정 난간에 의지한 자동선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신필이로소이다.” 모두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자동선은 명나라 사신 두 사람을 흠뻑 반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동선의 이름은 명나라 사신들 사이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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