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되던 봄이었다. 우선 찾아간 곳이 평양 성내였다. 봄이라 하나 우수가 엊그제요, 경칩이 아직 열흘이나 뒤에 있으니 능라도의 수양버들도 말뿐이요, 대동강 가에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다. 박생은 영명사를 찾아 방 한 칸을 빌려서 며칠 동안 묵어가기로 했다. 등 너머 기자묘 숲이 깊어서 좋았고, 눈앞 청류벽이 빈듯이 용강수에 비쳐 청아한 기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벗 하나 없는 평양 성내 한 끝에 와서 아침저녘으로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염불 소리에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 무렵 평양 산호주라 하는 기생 하나가 살고 있었다. 대개 유명한 기생은 얼굴이 예쁘고 춤 잘 추고 소리 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산호주는 얼굴이 박색이요, 소리 한 마디 춤 한 거리 출 줄을 모르는 기생이었다. 화류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신기하다고 만나는 손님마다 빈정대기 일쑤요, 산호주가 아니라 메주라고 놀려대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사나이들은 좀 색다른 것을 좋아하는 탓인지 관가에서 연회가 있거나 내로라하는 풍류객들은 선유가 있을 때에는 성내 일류 명기라 불리는 기생의 한 끝에 반드시 산호주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나 손님 앞에 나왔다 해도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말도 묻는 말에나 겨우, 그것도 입속말로 대답하는 정도로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꾸어 온 보릿자루 같으니.” 좌석에서 이런 꾸지람을 듣기도 했으나 산호주는 들은 체 만 체 술만 부어주곤 했다. 혹시 취객들이“대체 기생이란 뭘 하는 거냐?”하고 따지면“네, 손님네 풍류를 도와드리는 노리갯감이겠지요.”라며 태연히 받아넘겼다. “그렇게 잘 아는 네가 소리 한마디 춤 한 거리 추지 아니하니 그래도 흥을 돋운다는 거냐?” “네, 꽃을 보시지요. 아름다운 꽃송이도 좋지만 시들어진 떡잎이 한몫 끼어야 경개가 더하지 않습니까?” 마치“나는 떡잎이오.”하는 태도였다. 그러니 자연 산호주는 어느 좌석이든 손님 측의 한 사람 곁으로 반드시 끼게 되고 세월이 흘러가는 것과 정비례로 이름이 높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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