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중반이었으니까 어언 30여 년이 더 흐른 이야기다.
친구의 초청으로 광주에 가서 하루 밤 자게 되어, 저녁을 먹고 무료한차에 술 한잔하러 변두리 술집을 찾았다. 넓지 않은 공간에 작은 무대가 있고, 도심의 주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서 조용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주위가 수선스러워 지더니 무대에 드럼과 색소폰, 기타 주자가 나타나고 작은 몸집에 하얀 드레스의 여자가수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 가수의 노래가 시작되자 많지 않은 손님 모두의 시선은 무대를 향했으며 한 마음으로 몰입하기 시작했고, 자그마한 몸집에서 흘러나오는 혼신을 다한 가창력은 한 순간에 좁은 술집을 사로잡아 가슴을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앙무대가수에 비해서도 손색이 전혀 없는, 아니 오히려 훨씬 더 뛰어난 저 무명가수의 기량이 튼튼한 연줄을 타거나 돈이라도 있었으면 스타로 발 돋음 하여 가요 사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새울 수 있었을 탠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하나의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노래실력이 형편없어 아마추어보다도 못하고 국적불명의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잘 나가는, 지금의 이른바 인기가수들은 무슨 연줄이 있고 금전의 투자는 어떻게 하였을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소문같이 은밀한 거래가 있는 것일까?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어찌 그 무명가수 뿐이랴. 주위를 둘러보면 정치 문화 연예 직장 등 모든 분야에서 진흙속의 진주는 많고도 많다. 그러나 스카우트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은 숨은 인재가 발굴되어 성공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만큼 어렵다. 모든 것이 연줄과 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에게야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아 있지만 숨은 인재를 발굴하여 이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전국시대의 난세를 평정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새워서 근세 일본의 태평성세를 200여 년 동안 구가하게 하였고 전쟁능력 뿐만 아니라 관리능력도 뛰어났는바, 그의 국가관리능력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인사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행한 인사행위의 핵심은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능력이 있는 자는 자리를”이라 할 수 있으니 창업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희생한 심복이라고 해도 관리 능력이 없으면 절대로 요직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꽃은 주어도 열매는 주지 않는 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긴 세월 동안의 직장생활에서 느꼈던 점은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는 높은 사람의 주위를 맴돌면서 아부에 목매달고, 하는 채 하면서 자기 PR이 능한 사람은 빨리 출세하며, 그저 묵묵히 맡은 일은 훌륭히 해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사람은 뒤떨어지거나 도태되기 일 수였다. 세상살이 살맛나고 사회가 발전하려면 숨은 일꾼, 숨은 인재가 빛을 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위정자도 경영자도 눈앞에 얼씬거리는 사람만 보지 말고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시야를 길러서 진정으로 능력 있는 자, 그리고 비전과 기량이 있는 자를 찾아 등용하여 요긴히 쓴다면 더욱 밝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숨은 인재의 가치는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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