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심희수의 공부도 크게 서ㅇ취하여 22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인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심씨 댁에 크나큰 경사가 났다.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새색시의 정성이 이제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 영광이 색시의 덕으로 왔다는 덕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온 집안이 아직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는 어느 날 색시는 시어머니에게 조용히 말씀드렸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께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서방님께 마땅한 배필을 얻어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진작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는데 오늘에야 드리는 까닭은 혹시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소원이나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심희수의 어머니는 몇 차례나 펄쩍 뛰며 말했다.
“야야, 그게 무슨 말이냐?그 애가 이렇게 출세한 것이 다 누구의 덕인데!”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며느리의 은혜는 은혜고 이제 버젓한 양반집 규수를 며느리로 맞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으므로 그 일은 곧 이루어져서 양반집 규수가 새 며느리로 들어왔다.
일타홍은 갓 들어온 새색시를 정실부인으로 깍듯이 예우했으며 모든 일을 원만히 처리했으므로 말다툼 한 번 나는 때가 없었다.
세월은 또 몇 년이 흘렀다. 심희수의 벼슬은 승급되어 이조 낭관이 되었고 노모는 고인이 되었다. 일타홍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친정에 가고 싶었다. 부모의 얼굴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나리, 소첩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는데 풀어주실라요?”
자신의 출세가 다 누구의 덕인지를 잊을 리 없는 심희수로서는 그녀의 소원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부탁하고 심희수는 즉시 임금에게 아뢰어 금산 고을 발령을 청원하여 윤허를 얻어냈다. 금산 군수로 부임하자 3일 동안 잔치를 벌여 일타홍의 일가친착들을 대접했다. 금산 일대에는“누구누구는 딸을 잘 두어서 저런 영화를 누린다”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일타홍은 친정 부모에게 간절하고도 냉엄하게 당부했따. 관청은 여염집과 다르니 아무리 딸이 보고 싶더라도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친정 부모는 좀 서운하기는 했지만 딸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방문을 삼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신출세라는 목적을 이룬 일타홍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스스로 저승길을 택했다. 자기가 죽거든 남편의 조상들이 묻힌 심씨 선산에 묻어달라는 것이 마지막 요청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난 심희수는 텅 빈 가슴을 시 한수로 달랬다.
한 떨기 꽃송이 상여를 탔네 떠나기 싫어서 발걸음 무거운가 명정을 적시는 금강의 가을비는 그대가 뿌리는 이별의 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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