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때의 일이다. 평안북도에 있는 영변에 새로 부사가 부임해 왔다. 그런데 새 영변 부사는 근래 과거를 치러 장원급제를 한 인재로서 부임하자마자 백일장을 열겠다는 뜻을 각 고을마다 알리도록 했다.
백일장을 열겠다는 방이 나붙자 세상에 숨어 살던 선비들은 속속 영변으로 모여들었다. 해마다 열리는 과거에서 낙방의 고배를 맛보아온 선비들로부터 애송이 선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사람들이 시제를 앞에 놓고는 멋있는 문장을 써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선비들이 다 퇴장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호명관이 높은 대 위에 올라섰다. 드디어 장원이 결정된 것이다.
“장원에 이사항이오.”
소리 높이 불러진 장원으로 호명된 사람을 찾는 고개들이 사방으로 두리번거렸다. 개중에는 실망의 낯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 장원으로 뽑힌 이가 단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어랍쇼, 저건 꼬마가 아니야?” “저 애가 장원이라고?”
저마다 놀라움에 찬 말들로 장내는 물결쳤다. 그도 그럴 것이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이제 불과 열 살이나 되었을까? 코흘리개 정도의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호문관을 비롯한 참관인들이나 영변 부사마저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 혹시 사람이 바뀐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장원은 결정된 것이다. 곧이어 장원을 축하하는 풍악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시항은 여유작작하게 의젓한 태도로 상을 받았다.
영변 부사는 애송이 이시항의 시구가 너무나도 훌륭해서 믿어지지 않았다. “장내엔 하고많은 재사가 붐볐건만 사람의 재주란 알 수 없는 것이로군, 어쨌든 장한 일이로고.” 호문관의 호명 소리는 계속 되었다. 이윽고 영광을 차지할 이들의 호명도 끝나고 그 정차도 끝났다. 그리고 얼마 뒤, 급제자들을 포상하기 위한 연회석이 한참 절정에 도달했을 즈음에서다. 호문관이 사또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러느냐?” “글쎄 저런 조그마한 장원에게도 기생 수청을 들어야 하나요?”
호문관은 심히 난처한 낯으로 영변 부사의 눈치를 살폈다. 하긴 영변 부사도 그 소릴 듣고 보니 난처한 일이었다. 자고로 이곳 영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장원급제를 한 사람에겐 그날 밤만큼은 관가의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하여 장원한 사람을 포상하는 풍습이었다. 부사와 호명관은 그 일로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대대로 내려온 관습대로 한다면야 기생 수청을 들게 해야 되겠습니다만, 장원의 나이가 어리니 어찌할까요?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도록 할까요?”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부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관례를 깰 수는 없는 법! 더구나 장원으로 뽑힌 신분이고 보면 아무리 어리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 “지당한 말씀인 줄로 아뢰오.” “또 어리면 어린 대로 기생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사내대장부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잡담 제하고 관례대로 시행하렷다.” “예이!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이렇게 해서 기생 수청 문제가 해결됐다. 영변 부사는 이방을 가만히 눈짓해서 불렀다. 그러고는 그의 귓전에 살며시 전했다.
“무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통례대로 기생 수청을 들게 하였으니 그리알고 예쁘고 앳된 관기 하나를 뽑아 먼저 나를 만나보고 가게 하여라.”
그렇게 이르는 부사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웃음이 번졌다. 이방도 그런 부사의 표정을 보고 짐작이 간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듣거라! 오늘 밤 너는 장원급제를 한 사람의 수청을 드는 영광스러움을 얻은즉, 그리 알고 보살피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여라.” 부사는 능수버들처럼 매끈한 허리에 난초 향기를 풍기며 부복한 아리따운 관기에게 엄포를 놓았다. “만약에 장원과 더불어 동침을 한다면 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며 따라서 그의 애기로 내줄 것이로되, 그러지 못할 시에는 중한 벌이 내릴 줄 알아라!” “황공하옵니다. 분부대로 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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