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잠을 깬 이시항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다가 언제 일어났는지 옷을 단정히 입고 자기 발치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초선을 발견했다.
“아니, 벌서 일어났느냐?” “예, 서방님께서 단잠을 깨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초선은 밖으로 나가서 세숫물을 떠 받쳐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조반상이 들어왔다. 밥을 들고 난 후에도 초선은 나갈 생각을 않고 사뭇 초조한 듯 윗목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째 그러고 있느냐? 아직도 무언가 미진한 일이 있는 게로구나!” “예…… 실은…….” “어려워 말고 말해보거라.” “사실은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밤 사또께서 저를 이 방으로 보내실 때 서방님께서 저에게 정을 주셨다는 정표를 받아 오라 하셨사옵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사또의 엄한 꾸중을 받겠사옵기에 그러하오니 정표가 될 만한 것을 주시어 소인을 곤경에서 건져내옵소서.”
초선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죄 없는 이시항을 보며 정을 나눈 정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시항은 “오, 그래?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하며 선선히 응했다.
“속치마를 꺼내보아라. 내 너에게 줄게 별로 없구나!”
초선은 이시항이 어쩌려고 속치마를 내놓으라는지 그 뜻을 몰랐으나 안 내놓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시항은 속치마 끝을 잡더니 벼루에 먹을 뭍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창밖은 삼경인데 봄비는 뿌리고 두 사람의 유정한 마음은 두 사람밖에 모르는데 아직도 함께 지낸 정이 흡족지 않건만 무정한 새날은 자꾸 밝아오누나 해금을 알리는 파루치 소리에 소맷자락 부여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 고야.
초선은 백배치사하며 내청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본 영변 부사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허허, 과연 병필이요, 천재로다.”
초선은 영변 부사로부터 후한 상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선은 그 이후부터 연회에 나올 때면 이시항이 적어준 시구에 음을 붙여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