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집집마다 한 가지 농사만 짓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터만 있어도 비워두지 않고 집에서 먹을 것들을 심는 것이 농촌의 풍경이다. 텃밭이란 ‘집 안에 있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의미한다. 텃밭은 돈을 벌기 위한 농사라기보다는, 가족들을 위한 먹거리를 마련하는 정도에서 하는 농사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빈 터에 조금씩 심고, 신경써서 기르는 텃밭처럼, ‘고창 텃밭’ 꾸러미에는 ‘가족들을 위한 정성’이 담겨있다.
아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고창여성농업인센터(이하 센터)를 찾았을 때, ‘꾸러미’ 포장을 꾸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꾸러미사업 회원들을 볼 수 있었다.
신선한 농산물을 보내기 위해 당일 수확한 농산물만을 보내기 때문에, 꾸러미 품목을 짜는 회원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보였다. 다양한 품목을 개별 포장하고 담아내면서도 막 수확한 농산물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이날 꾸러미에는 오디 생과가 포함돼 있어, 냉동 오디가 녹지 않도록 빠르게 포장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었다.
회원들이 이날 꾸러미에 담은 것은 오디, 완두콩, 상추, 쑥갓, 치커리, 오이소박이, 무장아찌 등 7가지였다. 각 개별로 포장하고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꼭꼭 담아 봉합하는 포장작업은 처음이라 어색해 보였지만, 불편한 손놀림이 조금씩 여유로워질 때마다 꾸러미상자에는 내용물이 하나둘씩 채워지고, 포장의 마무리 단계에는 모두의 얼굴에는 넉넉함이 드러났다.
처음으로 보내는 꾸러미가 완성되자, 생산자의 사진과 한마디 인사글, 식재료에 대한 요리법까지 소개하는 꾸러미 편지를 넣고 꾸러미 상자를 닫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배차가 도착했다. 꾸러미를 실어보내는 회원들의 표정에는 설레임과 흐뭇함이 묻어났다.
오이를 제공한 김맹자 씨는 “조금씩 따다가 저온창고에 보관하다 요리하고 이곳까지 가져오는 과정에서 기름값이 더 들더라”고 번거로웠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은 즐거웠는지 웃음꽃을 피운다.
이날, 다과회 자리에서 다음 꾸러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복분자·오디와 같은 지역의 특산물은 다른 농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꾸러미 가격은 정해져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품목이 있으면 저렴한 농산물도 함께 꾸려야 수지가 맞는다. 또 소비자들과의 소통도 고려해야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꾸러미품목을 공지하면, 소비자들은 이 공지를 참고해 식단 계획을 세운다.
고창여성농업인센터에서는 지난 16일 경희총민주동문회에 고창특산물을 담은 꾸러미를 보냈다. 이번에 처음 시작하는 ‘고창 텃밭’은 센터 임원들이 주축이 돼, 25가족에 32꾸러미를 보내고 있다.
‘고창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우리텃밭 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꾸러미사업’으로 이미 시행하고 있다. 꾸러미사업은 생산자들이 농산물을 묶음으로 보내면, 소비자가 그대로 받아 식재료로 사용하게 되는 새로운 방식의 도농교류사업이다.
‘고창 텃밭’은 타 시군 꾸러미 사업과 달리 고정된 농산물이 없다. 대다수 꾸러미들에 있는 두부, 유정란, 콩나물 등의 고정품목 대신, 제철 특산물을 넣었다.
센터 김영숙 소장은 “농가들마다 개별 판매하기는 어렵잖아요. 개인적으로 하기 힘든 사업을 꾸러미로 묶어 판매합니다”라며 꾸러미 사업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 “손이 많이 가지만, 큰 소득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한 꾸러미에 2만 5천원씩, 2주에 1번 보내는데 택배비나 포장비가 만만치 않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텃밭을 꾸리며 조금씩 수확해 신선하게 보관하다 보니 손이 많이 가 많은 논밭을 가꾸는 임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꾸러미 사업은 규격화되진 않았지만, 제철 농산물을 전하다 보면 도시민들이 농업·농촌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며 사업의 핵심을 도농간의 소통에 있다고 말한다. 꾸러미 시범 사업으로 센터 임원들이 시작한 ‘고창 텃밭’은 아직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지만, 이미 소비자들과 의논해 가격을 결정하고, 그 안에 담기는 농산물을 통해 도농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소비자 중심이 아닌, 생산자 중심이다”는 설명처럼, 꾸러미는 생산자들이 선택한 농산물이 담긴다. 하지만, 새로운 농산물에 낯설은 소비자들을 위해 농사현장에서 찍은 생산자의 모습과 조리법 등이 첨부된 꾸러미 편지를 담는다. 소비자들을 위한 배려다. 이 편지를 통해, 도시의 소비자들은 조리법은 물론, 농사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보고, 제철 음식을 통해 농촌의 풍경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더구나, 생산자들의 얼굴이 실린 꾸러미 편지는 상품의 질을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꾸러미 사업 ‘고창 텃밭’은 바쁜 일상을 더욱 바쁘게 만드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임원들이 함께 웃으며 꾸러미 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도농간 소통을 통해 상생의 계기를 만들고, 도농교류의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유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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