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함경도 지방의 관찰사로 내려가 함흥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함흥은 북관의 중심지로서 물색이 화려했다.
그는 부임한 후부터 관기 이매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일찍이 박문수는 영조 18년경에 함경도 감진사로 내려가 그 지방 빈민을 구제하는 데 힘썼기 때문에 함경도 주민들은 그를 고맙게 여겨 잘 대접했다.
이때 박문수는 감영 안에서 각지의 방백과 수령을 단속하여 민폐를 일소하기도 했다. 먼 지방인만큼 때로는 가혹한 수탈을 일삼는 수령이 많았다.
그는 어사로서 관리들의 비리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방면에는 누구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박문수가 함경도의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안심했다.
“명어사가 함경도로 내려온다지? 이제 수령 놈들도 겁이 나겠네.” 백성들은 이러한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를 찬양했다.
박문수는 호조 판서를 여러 해 지냈으므로 재정에 대해서도 밝았다. 그런 한편 여인을 호리는 데에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한 명수였다. 삭풍이 불어오는 함경도에는 조선 왕조 초기에 김종서가 육진을 개척할 때부터 호기 있는 기풍을 보여주어, 원정 간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의협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문수는 관기 이매를 사랑했다. 북쪽의 여인은 남성 못지않게 강직했다. 이러한 모습이 박문수의 눈에 들어갔다. 가슴에 안긴 이매의 부드러운 여체는 더욱 매혹적이었다.
“사또, 소녀도 한양으로 가고 싶소이다. 데려가지 않으시렵니까?” “한양에 올라가 무엇 하느냐? 사람은 무릇 고향이 제일 좋은 법이니라.” “그래도 화려한 곳이 그립습니다. 그래야만 출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소녀도 사또의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
지방의 수령으로 내려간 사람이 그 지방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맞이하면, 대개의 경우 여인은 소생을 원한다. 소생이 생겨야만 언젠가 함께 한양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리고 사람의 정은 인연이 있어야 생긴다고 하지 않더냐.” “사또, 소녀에게도 아이를 낳도록 해주세요.”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사또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모든 일은 소녀가 하옵니다.” “그러한 소원쯤이야 못 들어주겠느냐?” 박문수는 선선히 대답했다.
다음 날부터 이매는 아들을 낳기 위해 명산을 찾아다니며 치성을 드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 비용은 모두 관에서 나왔다. 청렴한 관찰사 박문수의 체면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감영 안에 있는 이속들이 항의했다.
“사또, 관기가 산천에 기도하러 다니는 것은 안 될 일이옵니다.” 그래도 박문수는 이매의 청이라 하여 그대로 두게 했다. 그러자 다른 관속들이 또 들고일어났다. “청렴하신 사또께서 관기의 소청을 들어주시면 한양에 말썽이 생깁니다.” 박문수는 점잖게 타일렀다. 그래도 이속들은 자기들이 한양에 보고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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