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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르포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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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우리 고향 고창에서 불거진 성희롱의혹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지난주 일요일 저녁 방영된 KBS 제1텔레비전의 <취재파일 4321> 중 ‘고창성희롱’ 편에 등장한 군수와 의장의 발언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연일 들끓는 폭염의 날씨 속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어야 할 붉은 피가 들들 끓고 나니 뭔가 시원하게 뻥 뚫린 대로가 보인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캄캄하게 꽉 막힌 미로 속에서 한 줄기 바늘구멍이나마 발견할 빌미를 제공해준 이강수 군수와 박현규 전 의장에게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품위 있는 자리일수록 감사의 말씀 뒤에는 비판이 따르는 법이다. 비판이란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비난과는 그 성격이 같을래야 같을 수가 없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 살자는 뜻 깊은 취지에서 인류가 고안해낸 최고의 장치가 바로 비판이다. 그런데 작금의 고창 사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비판은커녕 그 비슷한 말투조차 찾아볼 길이 없다. 비판 비슷한 얘기를 했다가 고소를 당했다는 말은 자주 들린다.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이미 희망을 잃었다는 증거다. 법이란 인간의 편익을 위해 고안한 장치인 것이지 인간에게 고통을 주자고 만든 제도인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도덕과 상식이 아닌 법에 의존한 왕조치고 조기에 망하지 않은 사례는 하나도 없다. 인구 6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에서 역사니 왕조니 하는 단어들을 들이대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가당찮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이런 가당찮은 현실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낸 이강수 군수와 박현규 전 의장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진실로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인가?
<취재파일 4321>에 출연한 이강수 군수의 진술에 따르자면 군수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박현규 전 의장이 사진촬영 제안을 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프로그램에 얼굴은 없이 목소리만 출연한 박현규 전 의장에 따르면 누드사진 제안은 전혀 없었고 사진촬영 제안은 했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앞뒤가 척척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틀렸다. 일반상식만 있어도 두 사람 모두 이런 식의 발언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무슨 볼 일이 동시에 있어서 기획실 여직원을 그것도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 여직원을 의장실로 불러 내렸는가 하는 너무나도 초보적인 의문이 고스란히, 완전히 빠져 있지 않은가.
중국 근대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루쉰은 거짓말쟁이들과 몇 년을 싸우다가 이런 말을 했었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개는 사람이 달려가서 건져 주려고 하면 그 손을 물어버린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물인지 사람의 손인지 분별이 안 될 정도로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때 개를 살리고자 한다면 일단 몽둥이로 패서 실신시킨 뒤에 손을 써야 한다.
성희롱 사건의 열쇠는 현장에서 목격했거나 적나라하게 인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군수는 아마 이들의 입단속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군민들의 피해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엄중한 사태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의회 의원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도 이제는 면밀히 따져봐야 할 때가 되었다.
고창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해도, 이런 지경의 사태 앞에서도 침묵은 금이요나 하고 있다면, 고창은 이제 머잖아 썩은 시체들의 고장으로 소문나게 될 것이다. 나의 이런 발언이 매우 불쾌하다면, 나를 고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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