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흉년이 오고 천재지변이 나서 온 나라가 극심한 어려움에 처 하거나, 학정(虐政)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라에서도 일일이 대처하기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서로 돕고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게 된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해설한 문언전(文言傳)에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구절이 실려 있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는 뜻인바, 여기에서 여경(餘慶)은 선한 일을 많이 한 보답으로 자손들이 받는 경사를 의미하며 조상의 음덕(陰德)과도 비슷한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적선지가(積善之家)는 경주의 최 부자 집안, 논산 파평 윤씨 윤증(尹拯)집안, 구례의 문화 유씨 집안 등이 있는데, 이들 가문의 공통점은 남을 배려하고 적선을 몸소 실천한 가문이라는 점이다.
그 외의 집안들도, 인간의 본성은 선(善)이라 하여 내면적 도덕론을 편 맹자(孟子)의 영향에 따라, 선비의 덕목은 배려와 배품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실행을 위해 애써 왔다.
충청도의 명문가이며 동방 18현 중 한 분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아버지 김계휘(金繼輝)의 고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김장생의 집에 제사가 도래하여 푸줏간에서 돼지고기를 사왔는데 고기가 상했던지 그 고기를 몰래 훔쳐 먹은 개가 죽자, 머슴을 시켜 2~3마리분의 돼지고기를 전부 사오게 한 뒤 땅에 묻어 버렸다. 혹시나 동네사람들이 상한 고기를 사먹고 탈이 날까봐 미리 대처한 선의 실행이다.
삶이 불안해지면 먼저 적선을 생각해야 함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占)을 보고 부적을 붙이며 액땜 푸닥거리에 힘을 쏟는다. 또한 적선을 금전적인 것과 연관 지어서 넉넉한 위치에서만 실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살기 힘든 사람,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적선이야말로 진정이 담겨 있다.
있는 자들이 하고 있는 과시적인 적선을 열외로 하고 살펴본다면, 힘들어도 더 불행한 사람을 위하여 남모르게 묵묵히 적선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정읍 버스터미널 옆, 체 두 평도 안 되는 가게에서 라면을 끓여 파는 가난한 부부는 고달픈 삶 속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양노원이나 고아원, 독거노인을 찾아 없는 형편에 먹거리를 사고 가족이 되어주며 힘든 가사까지 거들어주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에 영원이란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유한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진정한 친구와 형제가 되어 줄 때 세상은 그런대로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적선하는 사람은 귀신도 건들이지 않는다 했으니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말 한마디로라도 선을 쌓아서 인간의 도리요 하늘의 뜻을 언제든지 실행하고자하는 마음이 충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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