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교육”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교육을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말할 때도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할 때도 있다. 전자의 의미로 볼 때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인식하여서 우리 인간생활에서 정치, 경제, 교육의 기본생활을 말할 때 그 교육을 말하는 것이며, 후자의 인식으로 볼 때는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을 두고 말하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들이 개인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교육에 대해서 좀 더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개인의 심신을 가치지향화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시키고자하는 하나의 사회, 문화적 과정이라 함은 부정 못할 것이다.
교육은 성숙자(가르치는 사람)와 미성숙자(배우는 사람)의 만남에 의하여 성립된다. 교육이 두 인격 주체의 만남에 의하여 가치지향화한다고 생각할 때, 선종(禪宗)의 이른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비유가 좋은 시사가 되리라 생각된다. ‘줄(啐)’은 병아리가 달걀 속에서 껍질을 쪼는 것이며, ‘탁(啄)’은 밖에서 어미 닭이 달걀껍질을 쪼는 것이다. 적기에 안팎에서 동시에 쪼임이 있을 때 병아리의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의미다. 이 때 어미 닭의 쪼임이 필요하나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사람(교사)은 배우는 사람(학생)이 인격의 낡은 껍질을 벗도록 적기에 영혼의 문을 두드리어 각성하도록 하는 자극으로서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성숙자, 미성숙자는 문화적 교양의 차이일 뿐 인격적 주체로서는 대등한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인격의 만남이라 할 때 그것은 인격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는 두 주체로서의 만남이어야 한다. 교육은 인간 조성작용으로서의 가치지향화일진데, 이는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함유한 두 주체로서의 만남이어야 한다. 이는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현(顯現)시키기 위한 것이다. 교육작용은 이와 같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한 두 인격 주체의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교사에게 요구되는 교육애와 학생의 교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토대로 한 인간애(人間愛)에 터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애를 떠난 가치지향화란 무의미할 뿐이다.
교육은 또한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을 현실성으로서의 인간으로 조성시켜 주는 작용이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실현을 조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조성작용이 방향하는 바는 자아실현을 통하여 주체적 삶을 향유하는데 있다. 주체적 삶에는 자주적인 선택과 결단에서 오는 책임이 뒤따른다. 다시 말해서 자유를 향유하고 그 자유에서 오는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다. 따라서 주체적 삶에서만 자유와 책임이 가능하며, 노예의 삶 속에는 자유도 책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유를 향유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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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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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육은 자아실현을 돕는 작용이다. 인간은 주체적인 삶속에서만 즉, 자아실현의 삶속에서만 ‘나’의 존재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자아실현’은 나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나’에 대한 확신은 ‘나’를 명확히 할 때 나타난다. 이리하여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이 자아실현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우리’ 속에서 나의 길을 주체적으로 깨닫고 확신하고 그 확신을 확실화함이 교육의 궁극의 목적이라 할 것 이다.
※고창출신 교육학박사로 2004년 대학교수 정년 퇴직 후, 현재 도산에서 거주하며 연정교육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 등 여러사안에 대해 연속 기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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