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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일상화된 사회의 우울한 미래
김수복 기자 / 입력 : 2010년 09월 06일(월) 11:05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김수복

르포작가 겸 칼럼리스트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낙마한 김태호 총리 내정자의 거짓말에는 뚜렷한 패턴이 있다. 과거 어느 시절에 있었던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없었던 일을 만들어내고, 이 거짓말을 정말인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거짓이 거짓을 낳는 거짓의 도미노 속에서 그 자신은 거짓말과 참말을 혼동하다가 마침내는 거짓을 참으로 확신하고 오히려 화를 내며 큰소리를 치고 나서는 이러한 패턴은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뒷골목 술집이나 도박장 근처 혹은 장례식장이나 경찰서 유치장에 가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있는 이러한 거짓말 릴레이는 사실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면서 거짓말을 전혀 안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하다못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다. 때문에 김태호 식의 거짓말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스런 거짓말은 속고 싶은 사람은 속아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속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속아주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속은 채로 눈 먼 바보가 되거나 아니면 동류의식을 느끼며 내심 자랑스러워하지만, 속고 싶지 않은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 조상의 조상에 조상까지 파헤치고 또 파헤쳐서 기어이 거짓말이 거짓말이었음을 밝혀내고야 만다. 극소수 이러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 덕택으로 인간 사회는 그나마 짐승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자부할 수 있는 도덕을 확보해 왔다.

 만약에 그러한 극소수 열정적인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간 사회는 아마도 맹수들 속에 던져진 갓난아이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김태호 내정자의 거짓말 사건은 극적이면서도 지루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영원히 전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토록 그 사람의 거짓말에 관심을 집중해 왔던가. 만약에 김태호가 자연인 김태호 씨였다면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 깊지 않았을 것이다. 깊기는커녕 “에이 그 사람 순전히 뻥쟁이구만”하고 몇 차례 낄낄거리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호는 자연인이 아니었다. 그에게 집중된 각종 의혹들 역시 자연인 김태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공직을 맡고 있으면서 그 공직을 이용해서 개인의 사적인 욕망을 달성했거나 달성하고자 했다는 것, 그러한 의혹이 있다는 것, 이것을 김태호씨는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지 않고 마라톤식 거짓말로 넘어가고자 했다. 거짓말에도 급이 있는 법인데 김태호식 거짓말은 급수가 너무 낮아서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창에서 불거진 성희롱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김태호식 거짓말의 축소판 내지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고약하고 심각할지도 모른다. 박현규씨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내용을 보면 더 이상 고창에서 산다는 게 치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없다. 세미누드 뭐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그만 눈을 감아야 했다.

 삼자 간에 소위 빅딜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박현규씨가 군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그동안 피해자를 자처하던 쪽에서는 인권위 등 관계기관에 기존의 진술을 번복하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지금 너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꽃삽 정도로 간단하게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이제 트렉터를 동원해도 막을 수 없을 지경으로까지 문제를 키워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군수 주변에 진실한 사람이 너무 없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일이 아주 흥미롭게 되어간다.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신이 나서 남몰래 춤이라도 추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돈 앞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 이른바 환장이라고 하는 것과 돈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사회학 논문을 쓰자면 수십 편이 나올 것이요, 영화나 연극 혹은 소설을 만들기로 하자면 브레히트나 찰리채플린, 도스토예프스키에 못지않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법도 하다. 이제 고창은 이런 식으로 유명해져 갈 것인가?

김수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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