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무장기포지의 문화재적 가치 활용 방안
지난 4일(목)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고창군이 주최한 ‘동학농민혁명의 발발과 무장기포의 의의’ 학술대회가 고창청소년수련관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 1부에서는 ‘무장기포의 역사적 의의’를, 2부에서는 ‘무장기포지의 문화재적 가치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본지는 지난 호에 이어 2부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주>
고창 동학 유적지, 역사성에 비해 문화재 지정된 곳 없어 이번 학술대회 2부에서는 신순철 교수(원광대)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의 문화재 지정현황과 과제’를, 이상균 교수(전주대)가 ‘문화재적 가치를 통해 본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를, 김양식 연구원(충북개발연구원)이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의 보존관리와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각 발표에 대해 조법종 교수(우석대), 이병규 부장(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 김희태 문화재 전문위원(전라남도)이 지정토론을 맡았다.
이번 학술대회 2부에서는 신순철 교수(원광대)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의 문화재 지정현황과 과제’를, 이상균 교수(전주대)가 ‘문화재적 가치를 통해 본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를, 김양식 연구원(충북개발연구원)이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의 보존관리와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각 발표에 대해 조법종 교수(우석대), 이병규 부장(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 김희태 문화재 전문위원(전라남도)이 지정토론을 맡았다.
고창군은 무장기포지를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전라북도에 신청(4월)했지만, 보완요청을 받은 상황이며, 10여년 전 ‘전봉준 생가’를 국가 사적(史跡) 지정을 추진했지만 그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나마 선운사마애석불 등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미술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서이다. 따라서 고창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직까지 없는 셈이다<표 참조>.
신순철 교수는 발제문에서 “동학농민혁명에서 고창지역은 3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다. 첫째는 선전포고를 한 무장기포의 현장이며 둘째는 최고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 셋째는 1차 동학농민혁명의 근간을 이룬 손화중 포의 근거지였다”며, “동학농민혁명 전체의 위상이나 중요도에서 첫 번째에 놓일 수 있는 ‘전봉준 생가’와 ‘무장기포지’ 등이 아직 문화재로 등재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무장기포지, 도기념물 지정부터…교과서 수록도 필요 이상균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의 연구가 역사적 배경보다 전투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지다보니1차 동학농민혁명 격전지였던 고부의 황토현, 장성의 황룡촌 지역은 무장기포지보다 역사적 가치가 덜함에도 이미 국가 사적으로 지정받았다”고 언급한 뒤, “창의문 선포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인 무장기포지의 경우, 먼저 도기념물로 지정한 다음 전국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 사적으로 승격시키는 것도 좋을 듯 하다”며 단계론적 접근을 주문했다.
김양식 연구원은 “초등 사회 및 중등 국사 교과서에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되었다’라고 기술되어 있어, 학생들이 무장기포지에 올 이유가 없고, 설령 와도 혼란스러울 뿐이다. 무장기포지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교육과정을 통해 교수·학습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이어 “고창군 1박 2일 관광코스 7개 중에서도 동학은 독자적 코스가 없는 등 고창군에서 무장기포지는 ‘무장읍성제’ 외에 사실상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작년 사적지로 인정받은 장흥 석대들 전적지 사례를 벤치마킹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2014년 이전까지 무장기포지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120주년 기념행사가 무장기포지에서 개최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24일(수) 전화통화에서 무장기포지의 문화재 지정과 관련하여, “고창군은 고증을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학술회의 등을 통해 보완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전문위원회에서 엄밀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라는 말을 통해,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종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