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토장 유점동 전 고창전화국장
|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뒤 웅장한 장단소리에 조명은 번듯 거리고 한 송이 꽃이 춤을 춘다. 휘어져 감기고 다시 뻗어 흐느적거리는 손, 나부끼는 천의(天衣)에 구성지게 내딛는 걸음걸이, 황홀히 흔들리는 율동 속으로 불빛에 얼비친 그림자가 비상한다. 손짓, 몸짓 하나하나 영혼을 담고 세상의 끝인 냥 폭발하는 정념이 불꽃처럼 승화한다. 하늘을 보는 듯하면 하늘이 내려오고 구름을 볼 것 같으면 구름이 따라 온다. 찡그리면 세상이 근심으로 일그러지고 미소 지으면 찬란한 오색무지개가 피어오른다.
차라리 창공을 누비는 한 마리 나비다. 백옥(白玉) 닮은 하얀 날개와 정을 듬뿍 머금은 아름다운 촉수(觸手), 향기까지 아낌없이 흘려주는 우아한 나비!
구름같이 떠올라 바람 따라 부영(浮泳)하다가 굿 소리가 서서히 종장을 향하면 그녀의 춤도 시나브로 멈춰간다. 파한 잔치의 허망함을 향하여….
지난 11월 20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아주 특별한 공연은 감동이었다. 마흔세 살 청춘이 다 묻어난 이명훈 농악전수관 관장의 개인 발표회는 그렇게 감동으로 물결쳤다.
속언(俗言)에 재주 있는 사람은 몸이 고단하다고 한다. 재주를 즐기거나 이용하려고 주위에서 쉴 새 없이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와, 언제부터인지 급전직하로 퇴색해버린 재인들 위상의 고단함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술과 문화와 재능을 대변하는 재인(才人)을 말하자면 무(巫)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수렵·목축·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인간집단이 커지면서 웅대한 대자연을 외경(畏敬)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상징성을 지닌 신(神)을 찾게 되었으며, 그 신을 향한 의례가 생기고 의례를 주관하는 사제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존재가 바로 무(巫)다. 그들은 주술(呪術)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天·地·人]을 아우르는 제관으로서 중심적 위치에 있었고, 무(巫)의 의식(儀式)은 액(厄)을 쫓고 복을 비는 점술적 기능과 음악, 춤, 기원(祈願)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한바탕 굿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러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재인 역시 무(巫)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작금에 와서는 서양 이데올로기에 빠진 예능프로, 영화, 미술, 음악 등이 변형되어 인기를 끄는 데 반해, 무(巫)를 기반으로 하는 종합예술, 예컨대 풍장굿과 사당놀이 등은 설 자리마저 뺏겨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세속의 싸늘한 시선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창농악의 전통성과 자칫 끊어질 위기의 제반 굿마당을 재현 발전시키는 데 젊음을 다 바친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숭고하다. 인물과 문화의 고장답게 훌륭한 명인·명창들이 명멸해간 고창에 이명훈 관장 같은 걸출한 재인이 대를 이어 곁에 있다는 것은 희망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관장의 앞날에 예술과 보람이 무궁토록 이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