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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쥐다> 전성희 글·소윤경 그림 문학동네어린이(보름달문고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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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를 가르는 것은 굵은 회색 띠였다. 은빛이 살짝 비치는 쥐색 같은 빛깔이다. 한편의 세계는 사람의 것이고 또 한 세계는 쥐들의 것이다. 얼굴 형태만 다르다 뿐, 모두 직립보행을 하는 호모사피엔스의 모습이다. 그 회색의 경계에는 다음과 같은 명료한 선언이 있다. ‘난 쥐다!’. 이 선언을 제목으로 끌어내 표지를 구성하고 있는 책이 바로, <난 쥐다>이다.
이 책은 전작 <거짓말 학교>를 통해 어린이문학이 이야기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혜성같이 등장한 어린이책 작가, 전성희의 올해 신작이다. 표지에서 말하듯, 이 책은 사람의 세계와 쥐의 세계를 번갈아 보여주고 있다. 흡사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夢]’ 같다. 인간 할머니네 집에 더불어 살던 주인공 쥐, 나루는 우연찮게 안내자를 만나 쥐의 나라, 뉴토에 가게 된다.
나루는 인간 사회와 흡사하게 작동하는 쥐의 도시 뉴토에서 인간이 쥐를 따라하는 것인지, 쥐가 인간을 따라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뉴토를 지배하는 부조리에 항거하며, 뉴토 통치자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개인과 사회가 존재하는 근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루와 그 친구들은 쥐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와 싸우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경계의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편도 저편도 아닌, 애매한 편에 잠깐 놓인 청소년에게 권하면 좋겠다. 조금 낮은 학년이면, <아주 힘센 빌리발트의 나라>(온누리)를 읽어도 좋다.
이대건(도서출판 나무늘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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