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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하는 공부 - 어르신 한글교실
김영숙 기자 / 입력 : 2010년 12월 20일(월) 16:48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김영숙 
고창여성농업인센터 소장

“또 닦어야겠네. 내가 이렇다니까.” 
“우리는 재밌어 좋은데 소장님 애통터져 어떻게 해.”
“내가 살다보니 이렇게라도 글을 다 써보고 정말 좋은 세상이여.”
“성님! 우리 꼭 다니세.”
“그려, 동생. 놀아도 여기 와서 놀고, 우리 공부 열심히 허세.”

 조심스레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글씨 잘못 써서 지우면서 하시는 말씀들.  ‘닦는다’는 말이 어쩜 그리 재미있게 들리는지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조금은 한가해진 겨울, 다시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교실을 시작했다. 아직도 김장들이 안 끝나 출석률이 저조하지만 몇 분이 오시든 나는 이분들을 위해 기꺼이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비워두고 있다.

 글자라고는 하나도 모르시던 분들이 한 자 한 자 익혀서 글을 읽고 이제는 제법 말이 되게 쓰시기도 한다. 택배주문을 받으며 소비자가 전화로 들려주는 주소를 어렵게 받아 적어 잘 보냈다고 자랑하고, 아들에게 하고픈 마음속 깊은 속내를 편지로 써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엄마가 공부하는 공책을 봐주며 “날 새서 공부해야지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하냐”는 딸들의 지청구를 애기하며 웃고, 통장 읽는 법을 알려 줄 때는 “아아~~ 그렇구나! 나는 왜 숫자 사이에 점이 찍혀 있는지 도통 몰랐어” 하고, ‘웨’자를 배울 때는 “소장님 그런데 예식장 가면 ‘웨**’ 라고 쓰여 있는데 도대체 무슨 뜻이야?” 하시길래, 영어를 한글로 써 놓은 거라고 알려줬더니 “우리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김장에 들어가는 양념을 적어 보랬더니 스무 가지를 쓰고도 ‘미원’이 빠졌다고 챙겨 쓰고, 숫자 공부하며 식구들 생년월일, 전화번호 적으면서는 요런 것을 여지껏 모르고 살았다고 신기해하신다.

 배움이란 나이에 상관없이 정말 즐거운 것이다. 한 가지를 배워도 신기하고 새롭게 보이는 즐거움이 있다. 공부하고 싶어도 시절을 잘못 타고나 한글도 못 깨우치고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못해 한이 된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어림잡아도 한 동네에 80%는 글을 모르신다. 그러나 대부분 일찌감치 체념하고 기회가 있어도 나이 먹어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더 많다.

 이분들도 아직 남모르게 우리 센터를 찾는다. 동네에서 도대체 날마다 가방 들고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어봐도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들만의 비밀이다. 아마도 한글 다 깨우쳐 자신감으로 당당해질 그날까지 그러실 것이다. 그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때는 옆집사람에게 “집이도 더 늦기 전에 공부해”라고 적극 권할 것이다. 그러면 이분들처럼 또 다른 어른들이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우리센터로 발걸음을 하시겠지. 그런 분들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영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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