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高敞)이 아니라 설창(雪敞)이다. 작년 12월 8일 첫 눈이 온 뒤, 온 천지가 눈에 파묻혀 있다. 하얗고 예쁘기는 한데, 자칫 도로와 샛길이 얼어 자동차와 어르신들 다니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도로는 그럭저럭 군청에서 치우지만, 마을 샛길은 도대체 누가 치우는 것일까. 특히 운신 힘든 어르신들 많은 마을은 눈 치우는 것도 청년들 울력이 없으면 힘들 것이다.
지난 6일(목) 눈 내리는 날마다 눈 치우는 ‘청년’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심원면 월산리 마산마을에 살고 있는 박난호 씨(56)를 찾아갔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심원 만돌에서 태어나 41살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 마산마을에 정착했다. 삼촌이 하시는 양어장 일을 도왔는데, 고창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나. 그런데 눈이 올 때마다 마을길에는 얼음이 얼고, 어르신들이 넘어져 다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부모님 생각도 나고, 어르신들 모습이 눈에 밟혀서, 눈을 치워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속에서는 아들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심원 마산마을에는 5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3분의 2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다. 박 씨는 오륙년 전부터 마을 주위와 샛길의 눈을 치웠다고 한다.
“5시 반에 나가서 마을 한바퀴 눈을 치우면 8시가 된다. 몸이 조금 피곤할지라도, 눈 치우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고 참 좋다. 이전에 아내한테는 운동하러 간다고 했는데, 아내는 운동하러 간다더니 옷에 고드름이 달렸네, 라며 농을 넣곤 했다. 어르신들은 뭐 그런 일을 하냐고 말리시지만, 요즘은 아들뻘 된 이웃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 편하게 다니시고 내 마음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박난호 씨는 부인과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삼촌이 양어장을 폐하면서, 요즘은 양어장 하우스 시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아내가 좋은 일도 몸을 생각하면서 해야지, 몸이 땡땡 얼어 되겠느냐고 합디다. 하지만 내 나이 56살이 이 마을에서는 새파란 청년 아닙니까.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 계시는데, 내 마당만 치우고 마냥 쉴 수가 없지요.”
인터뷰=윤종호 기자 정리=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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