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는 송도의 명창이다. 그녀의 어머니 현금은 자색을 구비한 여성이었다. 나이 열여덟 살 때 개성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하고 있는데, 때마침 다리 위로 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현금의 미색에 도취되어 정신없이 쳐다보며, 혹은 웃으며, 때로는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매우 단정한 옷을 입었고 의관도 화려하여 양반집 자제 같았다. 현금도 주목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역시 웃음으로써 대했다. 그러던 중 그 남자는 자취 없이 사라졌다. 저녁때가 되자 빨래하던 다른 부인네들은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현금이 홀로 남았다. 어느덧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 다리 난간에 의지하여 노래를 부르며 현금을 바라보았다. 노래 한 곡을 끝낸 후 개천까지 내려와 현금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시오, 낭자. 나에게 물 한 그릇만 주구려.” 현금은 표주박에 물을 듬뿍 떠서 남자에게 주었다.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받아 마셨다. 반쯤 마시다가 그녀에게 표주박을 내주며 말했다. “고맙소. 물이 참 좋군. 자, 이제 그대도 마셔보시오.” 현금이 표주박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보니 이제 웬일인가?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현금은 깜짝 놀라며 “이것은 물이 아니고 술이옵니다.”하고 쳐다보았다.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낭자가 준 것은 술이었소. 이제 도로 주는 술은 합환주로 아시오.” 기이한 인연으로 현금은 그 남자를 따라 어느 큰 집으로 들어갔다.
손은주(작가. 전북 정읍 출생, 전주여고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전공. 현재는 정읍시청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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