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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고창여성농업인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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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은 꾸러미를 배송하는 날이다. 이번 품목은 식혜, 도토리묵, 상추, 시금치, 복분자한과, 유정란, 시래기, 무우, 쪽파로 구성하였다. 이름만 보아도 군침이 넘어가는 싱싱하고 맛있는 건강식단이 그려진다.
오후 1시, 생산자들이 한분 두분 도착해. 각자 준비한 물품을 하나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50꾸러미를 준비하자니 9가지나 되는 물품으로 그 양이 꽤 되어 좁은 사무실이 꽉 차고 넘친다. 밖에까지 쌓아놓으니 마치 어느 시골장터 같은 모습이다. 7명이나 되는 생산자들은 앉을자리도 없어 간신히 운신하며 꾸러미 포장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장이라 하기에 민망하게 사무실이 좁다. 불만이 있을 법도 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너른 들에서 일하는 양 목소리톤이 높고 잠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아 머리가 아플 정도다.
손으로는 바쁘게 포장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하나하나 벌써 평가가 들어간다. “식혜양이 좀 적은 것 같아”, “쪽파를 뭐하러 힘들게 다 까서 보내냐”, “추운날 시금치 캐느라 손시려워 죽을뻔 했다”, “처음으로 시래기를 만들어보는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인지 몰랐어”, “ 상추가 얼지 않고 잘 컸다”, “닭들도 알 낳느라 고생한다” 등등. 이렇게 여럿이 한바탕 수다 떨며 힘쓰다보면 어느새 50개의 꾸러미가 다 완성되어 택배아저씨를 기다린다.
그러면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한숨 돌리며 진지한 회의를 시작한다. 먼저 자체평가시간. 조금은 어렵고 힘든 시간이다. 각자 준비한 물품의 양과 질과 가격이 적당하였는지, 품목별로 꼼꼼히 심사한다. 정말 좋았다고 칭찬도 듣지만 때론 듣기 싫은 비판의 목소리도 들어야한다. 이 시간은 여럿이 함께하는 조직의 운영은, 어떻게 해야 공평하고 민주적인지 훈련하는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다음꾸러미 준비는 어떻게 할지 준비하고 싶은 물품과 가격을 조정한다. 이때도 내욕심만 부리면 안되니 조심스럽다. 이렇게 회의가 끝나면 남은 물품들을 나눠먹고 한보따리씩 선물로 싸들고 모두 수고했고 잘 먹겠다는 인사로 마감한다.
생산자들이 돌아가도 센터는 택배 보내고, 꾸러미회원들에게 문자 보내고, 편지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다음날 무사히 잘 도착했는지, 그리고 소비자 반응까지…,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을 매주 하고 있으며, 꾸러미회원의 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많은 신경이 쓰이며 처리해야할 일들 또한 적지 않은 사업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사업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되는 구제역, 조류독감, 지난 배추파동 등 먹을거리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가져온 재앙의 시작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면, 내가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지금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미국식 농업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지역을 생각하고 소규모 공동체를 양성하고 가족농과 소농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꾸러미 사업은 농민과 소비자가 신뢰를 무기로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가는 좋은 모델이다. 우리 같은 꾸러미가 계속 늘어가면 소비자와 농민이 소통하는 규모가 커진다. 소비자는 농민을 믿고 안전한 먹거리로 건강해지며, 농민은 유통비를 줄이고 농약, 비료 덜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 제 값 받고 팔아 건강해질 수 있다. 꾸러미사업이 산적한 여러 농업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 시대 새로운 가치로 접근해야 할 사업임에는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여성농업인생산자들과 하하호호 꾸러미로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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