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친척들끼리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내 눈에는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손톱이 없고 맨살만 보이는 손가락은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나는 실례를 무릎 쓰고 그것에 대해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할아버지, 손가락은 왜 그러세요?” “아, 이건 6.25때 다친 거란다.” ‘괜히 아픈 상처를 물어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다 숨어 살아야 했고,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서 굶주림에 시달렸다며 말이다. 또 창고에서 잠시 잠을 잘 때면 쥐들이 먹이를 찾아서 주위를 ‘찍찍'거리며 잠을 깨웠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지만 난 아직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6.25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손가락과 남과 북은 나에게는 똑같은 의미이다. 남과 북 또한 할아버지의 손가락과 같은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 통일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없어진 것 같은 것이다, 너무 풍족하고 행복한 삶 때문에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만의 생활에 찌들어 사는 현실 때문에 관심을 둘 겨들이 없어서 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점점 통일에 대해 잊고 살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런 전쟁에 대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국민들이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통일이란 우리 민족의 눈물, 아픔을 닦아 줄 수 있는 손수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아직 손수건을 다 짜지도 않은 채 계속 회피를 거듭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거대한 것도 아니며 실천할 수 없는 일도 결코 아니다. 내일 아침 통일이 되는 것도 난 바라지 않는다. 그에 따른 다른 문제도 동반할 것은 물론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며 우리 모두가 실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앞당겨 줄 수 있는 열쇠이자 히든카드이다. 특히 이렇게 우리가 일상에 찌들어 살고 자신의 일에만 매달려 있을 때는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싶다. 그건 바로 작은 관심이다.
관심이라고 해서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다. 막연하지만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통일이 지금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북한은 통일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잦고 있는지, 북한과 우리 문화의 차이와 비슷한 점은 무엇인지, 왜 우리가 통일을 지연하고 있는지 등 우리가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더 통일에 대해 알게 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일 테다.
꼭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6.25의 아픈 기억이 사라지기를,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 얼싸안고 눈물의 바다를 만들기를, 온 국민이 일어서서 한반도기를 휘날리기를, 북한 친구들과 손을 잡고 같이 학교에 가기를 나는 바라고 또 소망한다, 우리 모두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통일이 되기 전에 북한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통일이 된다고 해도 보다 빠르게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상상이 든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북한에 가는 상상, 자유로운 발걸음과 감격에 젖은 눈망울들, 서로를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질 때 그동안 쌓였던 오해의 긴 시간을 해소해 버리는 순간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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