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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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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 호암마을에 있는 ‘요셉의 집’에서 노숙인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집’은 노숙인 자활 시설이다.) 노숙인들은 “농성도 농성이지만, 집이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못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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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선우경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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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요셉의 집’은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의 산하단체인데, 요셉의원 운영위원회에서 작년 12월 11일, ‘요셉의 집’을 처분하기로 결정했고, 노숙인측은 그 결정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요셉의원은 노숙인·영세민·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무료 의료기관이다.)
노숙인측은 “비어있는 요셉의 집 건물에서 그냥 살게 하기 싫으면, 임대라도 해줘서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 유족측은 “요셉의 집 처분 결정은 운영위의 결정이 아니며, 이문주 신부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요셉의원 한동호 사무국장에 따르면 “요셉의 집이 서울교구 사회복지시설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요셉의원의 지휘·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임의로 노숙인측에게 건물을 임대해 주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질 방법이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언제든지 노숙인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요셉의 집은 개방되어 있다. 다만 노숙인들이 요셉의원의 지휘·감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숙인들이 다시 요셉의 집에 들어온다면, 이후 요셉의 운영주체가 바뀌더라도, 최대한 노숙인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배려할 것”이라며, 요셉의 집 처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노숙인들이 요셉의 집에서 나온 이유 고 선우경식 원장이 선종(영면)한 이후, 요셉의원 원장을 맡게 된 이문주 신부의 요셉의 집 운영방침이, ‘6개월에서 1년 가량의 한정적 거주만 허락한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노숙인들에게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집 없는 사람들이 집에서 한번 살아보자고, 고창에서 집도 만들고 농사도 지으며 땅에 마음을 붙였는데, 1년만 있다 나가라는 것이다.
이에 반발해 요셉의 집 실무책임자였던 김학배 씨가 2009년 12월 31일 사퇴했으며, 급기야 요셉의 집에 머물던 노숙인 전원이 2010년 2월 10일 퇴소했다. 노숙인들은 별도로 ‘선우경식 기념 자활터’란 이름의 공동체를 꾸리고, 지난 1년 동안 ‘요셉의 집’ 인근 농가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어왔다.
2009년 7월 15일 이문주 신부가 고창에 내려와 기존의 ‘요셉의 집’ 운영을 문제 삼자, 김학배 씨와 노숙인들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고창 요셉의 집은 운명공동체요 가족공동체요 삶의 공동체입니다. 일정 거주 기간을 설정한다는 것은 설립취지와 근본정신을 뿌리째 뒤엎은 언급입니다. 저희들에게 이곳은 단순하게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이제 집이요, 함께 살고 있는 식구들은 가족입니다. 노숙인으로서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저희들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뼈를 묻으로 왔습니다. 이곳이 ‘평생 내 가족 내 집’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요셉의 집은 탄생될 수 없었고 운영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집이 만들어진 이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은 요셉의원을 창립해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의료활동을 21년 동안 펼쳐왔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약이 절실한 상황은 벗어나게 되었다. 약을 너무 많이 갖고 다니는 노숙인들이 생길 정도였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술은 낙이 되었다. 선우 원장은 의료도 중요하지만, 사회복귀를 돕는 재활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목동의 집’과 ‘성모 자헌의 집’이라는 노숙인 쉼터를 만들었다. 10여 년 동안 쉼터를 운영했는데, 노숙인들은 이 쉼터를 반복적으로 들고 났다. 수용·치료·동정·무관심·배제, 사회가 노숙인을 받아들이는 고정된 방식이었다. 환경이 변하지 않고 일거리가 없는 한, 장기적인 재활, 나아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자활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농촌에 일터와 삶터를 만드는 ‘요셉의 집’을 구상했다.
선우 원장은 2005년에 폐교된 고창서초 호암분교에 터를 마련하고, 2007년부터 이곳에 내려와 학교 건물 1층과 주변 정비를 하던 중, 2008년 4월 18일 지병으로 선종했다. 요셉의 집은 2008년 12월 이층으로 리모델링을 하기까지, 조경사업과 주변환경을 가꾸는데 노숙인들의 노고가 깃들인 공간이 되었다. 1층은 숙소로 쓰고, 2층은 프로그램실과 경당으로 꾸몄다. 그밖에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농기구와 저온창고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선우경식 원장은 재활을 평생 걸리는 일로 보았다. 이를테면 요셉의원의 현관을 지키는 안근수 씨는 알코올의존으로 20년 전부터 요셉의원에 20번 정도 입원을 한 경력이 있다. 주변에서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지만, 선우 원장은 몇 번을 찾아오든 끝까지 받아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안근수 씨는 술을 끊고, 요셉의원에서 노숙인들을 맞이하고 응급처치를 돕고 있다.
그렇게 재활에 성공한 사람 중에 ‘목동의 집’을 거쳐 고창에 온 사람은 다섯 명 뿐이다. 선우 원장이 재활을 이끌어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선우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고, 노숙인들에게 그 정신은 전해졌다. 그들은 자활을 위해 농사에 전념하고 있는데, 축사에서는 돼지들을 키우고, 1만평의 땅에 복분자, 블루베리, 오디, 고추, 고구마, 배추 등을 심었다. 절인 배추, 고추, 고구마를 후원자들을 통해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은 투자단계라 수익을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문주 원장이 ‘1년 이내 거주’라는 운영방침을 들고 나온 것이다.
요셉의 집을 지켜야 하는 이유 노숙인들은 ‘선우경식 기념 자활터’란 별도의 단체를 꾸리고, ‘요셉의 집’ 건물을 다른 데 넘기느니, 자활터에 임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활터 식구들은 현재 5명이지만, 조금 더 정착이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와서 함께 살 수 있고, 이들이 자활에 성공한다면, 다른 노숙인 알코올의존자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자활터의 김학배 씨는 “선우경식 원장이 시설을 만들어 1년짜리 노숙인 프로그램을 돌리려고 고창에 자활터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 노숙인들이 뿌리박고 살라고 터전을 준비한 것”이라며 “요셉의 집은 시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이고 가정이다. 우리는 선우경식 원장을 통해 다시 사는 법을 배웠다. 이곳은 선우경식 원장과 우리의 땀과 꿈이 배어있는 곳이다. 목숨을 걸고 이 집을 지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윤종호·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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