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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사람들 편에서 듣는 역사이야기
이대건 기자 / 입력 : 2011년 02월 22일(화)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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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의 책>
허은미 글, 권문희 그림
낮은산 출판사, 2010년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과거는 고정된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하나의 쌍이다. 정말, 과거란 어떤 것인가? 이미 지나간 것,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하겠는가. 그런 물리적인 의미의 ‘과거’는 불변하는 것, 고정된 것이다. 이것이 ‘같은 물은 다시 흐르지 않는다’는 시간의 개념이다. 이제 의미의 차원으로 슬쩍 넘어가보자. ‘그’ 과거의 현상은 어떤 의미였는가, 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그 ‘과거’를 보는(읽어내는,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 부단히 변하기 마련이다. 역사가 어떻게 현재에 의해 변화무쌍해지는지.

『백산의 책』은 역사를 다시 짓는 책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이 태어난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이다. 홍길동전을 지어낸 사람은 허균이라 한다. 허균은 임금의 시대, 오로지 적자 중심 세상에서 ‘중심의 전복’을 통해 시대를 다른 눈으로 볼 줄 알았던 사람, 그래서 ‘아니나 다를까’ 제 목숨 다 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백산의 책』은 허균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다. 사대부가의 버젓한 도련님도 아니고,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는 장돌뱅이 소년, 시장 구석 이야기꾼 전기수(傳奇叟) 곁에서 이야기를 주워들으며 자란 소년, 백산이다.

우연찮게 허균의 집에 심부름꾼으로 머물게 된 백산, 허균이 홍길동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이야기가 끊기는 고비마다 백산은 훌륭하게 ‘훈수꾼’ 몫을 다한다. 그가 꿈꾸던 세상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꿈이 합쳐져 이야기가 마무리 될 즈음 허균은 역모에 휩싸여 세상을 떠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장돌뱅이 생활로 되돌아간 백산의 귀에 낯  익은 이야기가 들린다. 홍길동 이야기다. 전기수를 통해 조선의 낮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사람답다’는 ‘그’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사실에 근거했다 해서 능사는 아니다. 『백산의 책』이 갖는 유려한 흐름이 할머니 무릎베개로 이야기를 듣듯, 편하다. 재미있다. 우리의 역사가 높낮이를 떠나 많은 ‘보통 사람들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흐뭇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대건(도서출판 나무늘보 대표)  

이대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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