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노쯔까아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 백제 유물과 아주 닮아있다. |
내 고향 도쿠시마현에, 백제계 고분이 있다!
내 고향 도쿠시마현(德島県)에는 요시노(吉野)강이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현의 중심지는 요시노강 강어구에 있는 도쿠시마시(德島市)다. 요시노강 상류를 40km정도 올라가면 미마라는 지역이 있다. 한자로서는 아름다운(美), 말(馬)로 표현하고 있다. 2005년부터 주변 마을과 통합해 미마시(美馬市)가 되었지만, 인구는 불과 3만 3천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다. 요시노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필자의 친정집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갈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런데 ‘도쿠시마현 매장문화연구소’라는 조그만한 전시장을 찾았을 때, 필자의 눈에 많이 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미마에 있는 고분 사진인데, 그 모습은 어떻게 봐도 한국에서 많이 봤던 백제계의 고분 그대로였다. 필자는 충남 공주에 오래 살았다. 공주에는 무령왕릉이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바로 미마의 고분이 공주의 그 형태와 너무 유사해 보였다. 도쿠시마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고향에 이러한 고분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매장문화연구소 직원에게 찾아가는 길을 묻고, 다음 날 가족과 함께 미마로 출발했다. 그 고분의 명칭은 단노쯔까아나(段の塚穴)고분이다. 약 1,400년 전 호족의 묘라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횡혈식석실분’으로 고분 내부는 돔으로 되어 있다. 이 형태의 고분은 일본에서 발견되지 않은 형식이라고 한다. 또한 고분 근처에는 군리폐사(郡里廢寺)라는 절터가 있다. 이곳은 약 1,300년 전에 건축된 도쿠시마 최고의 절로, 원래 나라현(奈良県)의 호류사(法隆寺)와 그 규모가 비슷한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한일관계사…아산 봉덕리 고분과는 어떤 관계?
이러한 시골에 왜 이렇게도 큰 고분과 호류사급의 절이 있었을까? 이 고분과 절은 일본의 역사나 지리로 봐도 이곳에 이러한 거대한 유적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시코쿠의 이 유적들은 본래 일본에 있었던 집단이 아니라, 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이 요시노강을 따라 이동해 와서 축조하였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근처의 절에 보관되어 있어서, 바로 절에 가서 구경하고, 스님께 이것저것을 물어 봤다. 이 유적을 찾아 한국에서 어떠한 연구자도 온 적이 없고, 한국에 이러한 고분 형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고분을 관리하는 미마교육위원회나 도쿠시마현립박물관에 가서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곳의 학예사가 매우 친절하여 여러 자료를 나누어 주었지만, 전문적인 이야기는 잘 몰랐다. 학예사는 아모우도시오 전 박물관장을 소개 해주셨다. 그 분이 이 고분과 절에 대한 연구를 하셨던 분이며, 고분의 명칭을 정한 일까지 하셨다. 우리는 바로 아모우 씨를 만나 뵙게 되어, 여러 가지 말씀과 자료를 받았다. 도쿠시마에 있는 유적과 반도의 관련성에 대해 물어봤지만,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답을 어려워하셨다.
이 유적의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사는 물론이고, 일본국내의 연구 실적도 너무 빈약하여 고대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도계의 유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삼국의 어느 나라 유적인지 연구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너무 시골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의 눈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본의 유적은 한국의 유적과는 달리 발견 후 발굴조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노쯔까아나고분은 알려진지는 오래된 유적이고, 발굴조사도 다 끝났다. 그러나 한일관계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미마에 살았던 호족집단에 관한 역사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미마의 고분은 백제시대의 고분과 매우 유사한 ‘횡혈식석실분’이며, 천정이 돔모양으로 된 궁륭(穹窿)식이라고 하였다. 절의 양식도 백제계와 유사하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또한 아직은 미마의 유적들이 한국학계에 보고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한일관계사가 어느 특정한 지역에 집중하여 교류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지역과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얼마 전 발굴된 아산 봉덕리 고분과 아직 발굴하지 않은 공음 ‘전방후원분’의 고창-일본 관계사를 누군가가 연구해보기를 기대해 본다. 고대 마한의 모로비리국의 고창사람들이 혹시 일본 어느 시골에 정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카무라 에미코(中村 惠実子) 씨는 일본어 강사와 통·번역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고창읍에 살고 있다.
나카무라 에미코.
※다음은 이 글의 일본어 원본입니다.
|
|
|
中村 惠実子
|
私の故郷徳島県には吉野川という大きな川が流れている。徳島県の中心はこの吉野川の河口に近い徳島市であるが、そこから吉野川を約40キロほど上流に向かって登っていくと美馬町という町がある。2005年に美馬町周辺の町と合併して美馬市となっているが、美馬市全体の人口も約3万3千人ほどしかない。吉野川を間に挟んで、北にも南にも山を抱えた自然豊かな町である。私の実家石井町からは車で40分ほどであるが、美馬町にわざわざ足を運んだことは一度もなかった。おそらく食指の動くものを見いだせなかったのだろう。
ところが、たまたま徳島埋蔵文化センターという小さな展示場で、不思議な写真を見た。
この美馬町にある古墳の写真であったのだが、その古墳の姿はどうみても、韓国でよくみた
王族の古墳とそっくりなのだ。私は忠南の公州で長く住んだのだが、あの松山里古墳群の石を積み上げた形、あれと良く似た姿だった。徳島で生まれ育っていながらも徳島にこんな古墳があるということは知らなかった。埋蔵センターのスタッフの方に行き方を教えてもらい、次の日家族で美馬町に行った。その古墳は正式な名称を段の塚穴古墳というそうだ。約1400年前の豪族の墓らしい。横穴式石室というスタイルでつくられており、古墳内部はドーム状になっている。この形状の古墳というのは他にあまり例がないらしく、全国でもこの周辺でしか見られないそうだ。
この段の穴塚古墳の近くに、郡里廃寺跡という寺跡がある。ここは約1300年前に建築された徳島県内最古の寺院跡だそうだ。奈良の法隆寺といえば、日本を代表する奈良時代の建造物であるが、この寺は法隆寺とほとんど同じ規模の広大な寺院だったそうだ。この山奥になぜこんな大きな古墳があり、法隆寺並みの寺院があったのか。これは古墳や寺院の築造時代からも地理的な面から見ても、大陸か半島からの移住者がこの吉野川の流れにのってここまで移動してきてつくったものだろうと考えた方が自然だ。実際この遺跡に関してはそれが定説になっているらしい。段の穴塚古墳出土の遺物は、美馬町内のお寺に納めされている。遺物を見学がてら、住職さんに話を聞いたが、韓国から研究者が来たことなど一度もないというし、韓国の古墳に良く似ているという話も一度も聞いたことがないとおっしゃる。この地域の古墳は教育委員会の管理下に置かれているそうで、教育委員会に寄って話を聞いたが、詳しく説明できる方は居ないようで、県立博物館に行って聞いてくれといわれそのまま県立博物館の事務所に向かった。県立博物館では学芸員の方ができる限りの資料を分けてくださったが、もっと詳しいことを聞きたいのなら、段の穴塚古墳の名称を命名した前博物館館長の天羽さんのところへ行った方がいいという。段の穴塚古墳の研究を一番良くした方で、古墳の命名もその方によるものだからと。すぐさま連絡をとって天羽さんにお目にかかってきた。色々お話を聞かせていただき、資料もたくさんいただいた。この徳島県にある古代遺跡と半島の関係性について伺ったが、はっきりこうだと言いきれない部分がたくさんあるそうだ。日本国内のことにしても、古代のことになると推測に頼るしかない部分があるという。ましてや半島系大陸系遺跡と言っても、それが百済なのか、新羅なのか高句麗のものなのか、などというその流れまではどうとも追えないようだ。
故郷の遺跡が韓国の研究者の目にどう移るか興味のあるところである。夫が美馬町の遺跡に関する報告書を韓国の考古学学会に提出するという。日本の遺跡は発見されても発掘調査されずに放っておかれることもあるという。段の穴塚古墳はかなり古くから知られた古墳であり、調査もされている。しかしこの古墳に関する意味付けは十分になされてない。美馬町に住んだこの豪族集団に関する手がかりが乏しいためである。
こういった古代文化の流れに関してより一層の韓日の交流を期待したい。歴史は近代だけで形成されたものではない。古代から連なる流れの中にある。大きく全体を見渡すためにも、もう一度古代の検証をしてほしいと思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