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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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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여행작가 한 사람이 고창을 찾았다. 그는 5일 동안 고창의 곳곳을 탐험하고 돌아갔다. 돌아가던 날 그는 기이한 부탁을 했다. 고창천에서 혹시 날개 달린 붕어나 발이 달려 걸어 다니는 송사리가 발견되거든 자기에게 즉시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여행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답게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첫째 그는 어디를 가든 그 고장의 유지라든가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들과의 접촉을 피해 다녔다. 정형화 내지 획일화된 주입식 정보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어디를 가든 반드시 그 고장을 대표할 만한 산과 하천 그리고 시장을 찾아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그 고장의 기운을 읽고, 강이나 시내를 통해 그 고장 사람들의 지혜를 유추하며, 시장에서는 특산물과 인심의 정도를 읽는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논리정연한 사람이 날개 달린 붕어는 뭐고 걸어 다니는 송사리는 또 뭐란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도 않았지만, 중국의 박물지 격인 <산해경(山海經)>을 옆에 두고 가끔 펼쳐보는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상상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되겠거니 여기고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 매주 한두 차례씩, 한 달이면 적어도 여서일곱 번씩은 고창천으로 나가서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고창천 중에서도 그가 특정해준 한 장소가 있었다. 우성예식장 뒤편의 보에 설치한 어로 즉 물고기들의 통로가 그것이었다.
고창천은 현재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명칭으로 볼 때 이 사업의 주목적이 생태, 즉 살아 있는 동식물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자는 데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이런저런 여러 방식의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 중에서도 우성예식장 뒤편의 보 위에 설치한 어로(魚路)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했다.
물고기는 기본적으로 날개가 없고 다리도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때문에 하천정비를 할 때 낙차가 심한 보에는 반드시 물고기들의 통로를 따로 만들어준다. 그 통로는 물에 잠겨 있어야 하고, 항상 물이 흐르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그런데 고창천의 보에 설치된 어로는 물이 없는 곳에 돌출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산해경>에는 온갖 기괴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등장한다. 이런 상식이 없었다면 아마 돌출된 어로를 보면서 담당 공무원들의 무능과 태만이나 질타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뭔가 있는 모양이다. <산해경>에서 그림으로나 보았을 뿐인 날개 달린 붕어나 두 발로 뛰어다니는 송사리 같은 것이 고창천에 있나보다. 이런 생각으로 지난 8개월여 동안 열심히 고창천으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바싹 마른 어로가 있을 뿐이었다. 어로가 설치된 보에서 한참 아래 다리 밑으로 붕어와 송사리들이 놀고 있고 그것을 잡아먹는 새들이 있을 뿐이었다. 혹시 물고기들이 밤에만 날개를 펴고 올라가는가 싶어 자정을 즈음한 시간에도 나가보았다. 심지어는 먼동이 트기 전의 새벽에도 나가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뛰어다니는 송사리도, 날개 달린 붕어도, 그 어떤 기괴한 형태의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고창의 공무원들께서 꼭꼭 숨겨두고 일 년에 한 차례씩만 물고기들로 하여금 날고 뛰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직도 4개월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적어도 1년은 채우고 나서 그런 물고기는 고창천에 없다고, 담당자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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