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화를 받았어요. 군산 친구를 통해서 저와 잘 통할 것 같다는 소개를 받았데요. 그날 밤 바로 맥주 집에서 만나 첫인사와 함께 신나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남 살아온 이야기가 거의가 한 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지요. 하물며 연고없이 고창에 들어와 터 잡고 산다는 건 남다른 사연이 있지 않았겠어요?
과수원을 하고 싶었어요. 고향은 강원도였어요. 서울 경기도 쪽에서 계속 살았고요, 잠시 교편도 잡았었죠, 그 후엔 학원 강사생활을 했었는데 30대 후반 부터는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학생들과 교감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면서 그만 두게 됐죠. 무작정 과수원을 하고 싶었어요. 또 전라도에 가서 살아보고 싶었죠. 전라도 여행을 다니다 고창에서 하루 자게 된 인연으로 이사 온 지 6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신림면에 살았었죠. 과일을 알려고 처음엔 고창 약관에서(이삼년전부터 거의 없어졌지만) 1톤 트럭 사서 전국을 따라다니며 과일 도매를 했어요. 수박부터 해서 감까지 끝나고 나니까 농사지은 것 보다 더 배운 것 같았어요. 지금은 고창에 복분자가 많아졌지만 감 말고는 과수재배가 적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 후에 낯선 곳에서 어울리며 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월산리 산 밑으로 들어와 살았죠. 여기서 몇 년을 외부 접촉 없이 지냈어요. 집을 수리해서 살다보니 사용하지 않는 식당이 신경 쓰이는 거예요. 그래서 강원도 출신이기도하니까 막국수라도 팔아보자고 시작했다가 닭도 잡아달라고 하면 잡아주고, 오리고기도 팔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지금의 산정가든이 되었습니다.
‘노사모’ 와 문성근 씨가 주도하는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회원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학생일 때부터 전공과 상관없이 컴퓨터공부를 좋아했어요.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 집에서 일을 했죠. 그렇게 집밖을 나오지 않고 몇 년을 보냈어요.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생활이 달라졌어요. 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었어요, 노사모 활동을 했고요, 탄핵시절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며칠동안 참가하기도 했었는데요, 고창으로 온 이후엔 전혀 활동을 하지 않다가 사망소식을 접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노사모 활동을 시작했고요, 지난 번 추모 1주기 때 봉하마을 함께 가기 현수막을 걸고 고창의 여러분들과 다녀오게 됐죠. 그때 많은 분들의 격려전하를 받았어요. 그 이후로 여러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죠. 덕분에 술 먹을 일이 많아져서 지금은 줄이는 중입니다.(웃음)
지금은 전북 노사모가 매달 모임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됐고요. 고창에서 노사모 활동은 거의 저 혼자 하고 있죠. 작년에는 또 우연하게도 배우 문성근 씨가 주도하는 야권통합운동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란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작년 가을에 문성근 씨가 고창에 왔어요. 그때 친구와 둘이 현수막도 걸고 홍보활동 같이하고 우리 집에서 점심을 대접했었죠. 그렇게 또 활동 할 일이 늘어났죠.
함께 하는 일을 찾고 있습니다. 식당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또 한사람을 소개시켜주고 그렇게 많은 분들과 형, 동생 하며 재미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 분들이 아주 살가워 금방 친하게 되더라고요. 테니스 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운동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중입니다. 공동체마을을 이룰 수도 있을 거고요,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살려서 함께하는 사업들이 없을까하고, 만나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만 천천히 여러 가능성을 살펴서 준비하려고요. 다 각자 본업을 갖고 있으니까 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죠. 큰돈을 벌고 싶은 맘도 물론 없고요.
가족 모두 주체적으로 살기를 바래요. 딸이 하나 있는데 대학교 4학년이에요. 고등학교 이후로 학비 대 준적이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장학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교를 다녔어요. 기숙사비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졸업하면 남자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들어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해요. 딸의 인생이니까 주체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거죠. 아내도 음식솜씨가 있으니 식당운영을 주도적으로 하고요.
※ 혼자 살기도 팍팍한 세상입니다. 농촌에서 산다는 건 더 어렵게 느껴지고요. 그런데도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고 더 좋은 세상을 희망하며 꿈틀대는 분들을 만나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생활정치라고 한다죠. 구태여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의 건전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거든요. 만나는 내내 진지하면서도 밝은 모습이 좋았습니다. 갑장친구를 만나서 고창살이가 더 재미있어 질 것 같습니다.
김동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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