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치(坐雉)나루 북녘 두 마장 바닷길, 그리고 곰소 앞바다의 한 마장거리에 두둥실 떠있는 연꽃 한 송이. 어떤 이는 당신을 죽도(竹島)라 부르고 어떤 이는 당신을 대섬[大島]이라 이름짓고 있다.
남쪽 해안 바닷길로 당신이 거느린 연꽃뿌리 범 바위와 고실바위가, 심원 땅 하전(下田) 앞바다에 말목처럼 박혀 태초 이래의 푸른 하늘을 잔뜩 이고 서 있다.
범 바위는 큰 고실로 검당 고실이라 전해오고 고실바위는 작은 고실로 하전고실이라 불려오고 있다. 앉은 꿩이 파닥거려 건너뛰면 부안(富安)땅 선운포(仙雲浦)에 이른다하여 이 나루를 좌치진(坐雉津)이라 일컫는데 그 옛날 나루뒷산에 독수정(獨秀亭)을 세워 선비 유영작(柳永綽)이 후학들을 가르친 흔적이 주춧돌에 서려있고 용기(龍基)마을 웃뜸 산 몰랑이 삼망산(三望山)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방장산(方丈山), 북녘으로 봉래산(蓬來山, 변산), 동부간방의 영주산(瀛州山-두승산) 호남의 삼신산(三神山)이 이마에 가득 차오르는 풍광이일품이다.
동백정포(冬栢亭浦-동호포) 북쪽 한 마장 거리에 큰섬, 작은섬이 형제처럼 나란히 떠 있어 1950년대까지만해도 통치마 걷어올린 아낙네들이 엉덩이살 다 내놓고 건너가서 바다고기들을 생채로 잡아오고 뗄감도 이고 날라 삶의 터전으로 드나들었다.
지금은 이 섬을 일컬어 외죽도(外竹島)라 하고 부안향의 대섬을 내죽도(內竹島)라 호칭한다.
역사적으로 내죽도 연안은 고려중기까지 도자기의 고작이었던 고창해안지역 수많은 청자요지의 활무역 본거지가 되어 있어 가끔 가끔 그 수장품들이 도굴꾼의 요량으로 건져지곤 했단다. 지금도 내죽도 사방언저리엔 욕심있는 도굴범들이 군침을 흘리는 대목이다.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주) 柳永綽(1813~1866, 호 獨秀齊, 高興人) 高宗朝 學者 고창문화원장을 역임한 이기화 소장이 고창의 지명과 관련된 향토서사시를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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