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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일 (전교조 고창지회장 고창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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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주로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생각이 결정되는데, 원래는 내가 목표로 하는 교육 목표와 학생의 실정을 조화시켜 적합한 학습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어쩔 때는 내 생각대로 밀고 가다보니 학생들이 따라주지 않거나, 시큰둥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공이 상당한 학생이 나타나 나의 의도를 거부하거나, 비웃거나, 버릇없이(?) 대하면 순간 교육이고 뭐고 내 안의 혼이 송두리째 유체 이탈하면서 속 깊이 묻어 둔 감정을 폭발시키곤 한다. 그때의 내 모습을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참으로 창피하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이래저래 뛰어다니며, 여기저기서 얼굴 벌개지며 말하고, 밤새워 수업계획을 짰던 내가 어느새 세상의 정글 법칙을 되뇌이며, 복종과 세뇌화의 화신에 둘러 싸여 열변을 토하는 나로 변할 때마다, 한심함을 떠나 내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마저 든다.
학습량을 줄여야 한다며 교과목을 줄이고, 야간자율학습이나 0교시 금지, 사교육 금지를 외치는 교육당국이 뒤로는 주요 과목의 학업성취도로 학교와 학생을 평가, 서열화하며 차등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거기에다가 다양한 체험과 동아리, 독서 활동을 하라고 하면서도 대학 입시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국영수 중심의 평가와 대학 본고사 수준의 전공 면접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 어른들의 속은 정말 알 수 없는 미궁과 같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과 이전의 교육이 혼재되어 과도기에 있는 듯하다. 학생들에게 매를 들어야할 지 말아야할 지, 학생들의 용모를 단속해야할 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할 지, 국영수 점수 중심의 냉정한 서열을 따져야할 지, 개인마다 맞춤형의 능력을 북돋아줘야할 지….
중요한 것은 교육은 본질상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100을 투여하면 100이상의 결과가 나와서 투여자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장사윤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같다. 어느 부모가 100을 자식에게 주고 100 이상을 받으려하는가?
더구나 교육 정책은, 교육 행위는 바로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기다려 볼 일이다. 예를 들어 얘기해 보자.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한다. 그렇다고 이전의 매와 회초리, 억압적 규율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학생들을 다그치고 야단쳐봐야 그것은 그때뿐이다. 교사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를 존경한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성의를 다하기에는 아이들 수가 너무 많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수업 방법도 개발해야겠지만, 5∼6명의 그룹과 시간을 내어 대화하며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방법도 괜찮다. 6회 정도 점심을 같이 하면 반 전체 아이들과도 부쩍 친해짐을 알 수 있다. 이 그룹 생활 지도는 개인 지도와 함께 1년 내내 함께 진행하면 더욱 효과가 있다.
결국 누군가가 길을 내야 한다. 모두가 쉬운 길만 선택해서 가려한다면, 새로운 길은 나지 않을 것이고 진보와 발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육은 쉼없는 시도와 기다림이며, 매우 비효율적인 사랑의 행위이다. 여기서 더욱 필요한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끼리의 연대이며, 서로 힘주는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고창 지역에도 교육을 위해 서로에게 힘주며 교육의 기다림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돌아서면 유체 이탈(?)을 밥 먹듯이 하는 나 자신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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