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알뫼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살로 간다고 하였다. 알찐 장터로 소문이 나서 삼남 일대의 장돌뱅이들이 늘 웅성거려 그 훈짐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옷깃을 스쳐 웃어주는 그 여유 있는 미소들이 포개만져도 다음 장날 행여 마주대할까 기다려지는 조그만 소망들이 주렁주렁
언제 만나든 꼭 만났어야 할 사람도 있고 그저 모르는 체 척박하게 살던 사람들도 우연한 흥정거리 웃음바다에 묻혀 마냥 만나는 인연 복으로 흠뻑 젖는 지도 모른다. 기억해주지 않는 만남이라도 간직해주는 추억거리조차 없어도 잘 먹을 수 있는 행복의 조건에 빗대어 소박한 아낙네들의 행렬이 넘실거리기만 해도 그 다음 장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밤이 이슥해지면 텅 빈 장터 길은 기해년(1899. 4. 22) 의병난리 때 숨 거둔 의병들의 구천을 헤매던 혼백들이 둘러앉아 지나가는 밤바람은 그냥 통행시켜 주었겠지요. 장터 어귀 돌담자락 꼴불견으로 비쳐진 곰방대 자국까지 독립운동의 마지막 보루가 된 의병들의 핏발이 서린 구석구석을 흥건하게 적셔주었던 역사의 흔적을 어느 누가 씻어주었을까
서민들 애환 서린 삶의 모습이 꾸밈없이 펼쳐지던 식후경 같은 안도와 낙천적인 멋을 풍겨주어 물건을 사고파는 도치기들 말고도 푸념 없이 장터 고샅을 둘러보는 니나노 같은 습속들을 채워낸다. 장 모퉁이에 판을 벌리고 있을 해학과 재기 넘치는 장타령 판의 능청맞은 익살과 재담
춤과 노래판까지 끼어든 살찐 풍경들이 집에 가서 열어놓을 말 주머니 챙기려다 친구나 사돈네 팔촌이라도 만나면 구수한 정담들이 무성해 청량제의 쫄깃한 입맛 돋는다. 아무 할 일 없는 사람도 다음 장날을 기다릴 것 없이 풍부한 물산과 알찐 여울 속에 알뫼장은 또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고창문화원장을 역임한 이기화 소장이 고창의 지명과 관련된 향토서사시를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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