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양민희생자 위령제가 오는 4월 4일(월) 오전 10시 30분부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 세워진 위령탑 앞에서 개최된다.
‘고창군 양민희생자 제전위원회’(위원장 황긍선)는 2007년 4월 5일 위령탑 제막식을 가지고, 매년 양민희생자 19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현재는 희생자로 확인된 1115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황긍선 제전위원장은 “동족상잔의 역사 속에서 인민군·국군·좌익세력·경찰에 의해 학살된 1900여 양민희생자의 영령을 기리며, 결코 이러한 전쟁과 폭력이 되풀이 되지 않고, 반드시 사랑과 평화가 지켜지는 세상이 되기를 가슴 깊이 염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94년 ‘전북도의회 6·25 양민희생자 실태조사 특별위원회’는 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국군11사단 등 군경에 의해 공음면 590명, 심원면 200명, 상하면 200명, 무장면 150명, 해리면 100명 등 1240명의 양민이 학살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를 근거로 위령탑이 조성된 것이다.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 끝에, 2008년 4월 이 사건을 ‘고창 11사단 사건’으로 명명하고, 11사단에 의해 공비토벌을 빌미로 주민 273명(공음면 선산마을 79명, 해리·심원면 105명, 상하면 오룡마을 12명, 고리포마을 36명, 택동마을 41명)을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발표했다.
양민희생자 숫자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유족들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희생자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령탑을 훼손하거나 “국군이 좌익을 소탕한 것” 뿐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조사가 들어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결국 2010년 6월 30일, ‘고창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이라 다시 명명하고, 주민 333명(희생자 328명, 부상자 5명)이 11사단·전북경찰·고창경찰에 의해 ‘좌익’, ‘빨치산’, ‘부역자’ 등으로 몰려, 현장에서 살해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최종 확인해 발표했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고창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으로 확인된 153명보다 더 많은 양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고, ‘고창에서 김상용 등이 좌익세력에 의해 집단희생된 사건’으로 확인된 6명을 포함해 최소 70명에서 최대 12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으며, ‘고창에서 정복수 등이 적대세력에게 희생된 사건‘으로 18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추정했다. 그리고 ‘무장면 월림마을 집단희생 사건’으로 전북경찰에 의해 주민 89명이 집단학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jinsil.go.kr) 정보마당에 들어가면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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