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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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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한나라당은 전주까지 내려와서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호남에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이른바 서진(西進)정책의 일환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하 선거의 계절이 오는구나’하고 이내 알아차릴 수 있는 이벤트성 정치 행보였다. 이벤트의 주요 콘셉트는 ‘호남 품에 안기기’였고, 전면에 내건 간판은 ‘호남발전특별위원회’였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잘 안될 때 사용하는 신장개업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실내 공간을 조금 넓히거나 벽지를 새로 바르고 문짝도 몇 개 손보고 간판도 살짝 바꿔 달고 해서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넙죽넙죽 절을 하는, 외양은 변했지만 내용은 예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신장개업의 특징은 간이라도 금방 빼줄 듯이 말을 화려하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두언 최고위원이 말했다. 영남의 거가대교는 십 년이 채 안 되어 준공을 했지만 호남의 새만금은 19년이 넘도록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이것이 대표적인 차별 케이스라고 말했다. 비교 대상이 너무 엉뚱하지 않은가.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대안 제시는 전혀 없이 지역민들의 감성이나 살짝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신장개업 스타일이라 할 만하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 표정과 방식이 압권이었다. 역차별 시비에 휘말려서 고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호남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해서 호남 사람들의 이쁨을 받고, 호남의 품에 안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호남 품에 안기겠다는 말을 하다 말고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고민은커녕 실무자가 써준 원고를 사전 연습도 없이 읽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해프닝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피식, 웃어버리는 우발적인 실수를 통해 자신의 몸은 ‘지금’ 호남에 와 있지만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었다.
전라북도의 최대 관심사는 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 문제이다. 집권여당의 최고위원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최고의 입에서도 그에 관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도지사의 작심한 발언이 있고서야 뭐라고 한 마디씩 내놓기는 했지만, 해당 부처에서 신중하고 엄정하게 검토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나마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치를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원희룡 최고위원마저 우물우물 빠져나가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의 원희룡 의원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자신 없는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던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과학적인 데이터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답은 오래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발표할 시점을 못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가 3월 30일로 잡혀 있었다. 4대강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넣고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는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도저히 이행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분노할 게 너무도 뻔한 ‘텃밭’의 민심을 어찌할 것인가. 전북에서 침을 흘리고 있는 토지주택공사를 확실하게 영남으로 몰아줄 필요가 있었다.
그에 관한 사전정비 작업의 하나로써 호남 품에 안기고 싶다는 둥의 ‘신장개업 이벤트’를 벌인 이 잔머리의 귀재들, 이 거짓말쟁이들의 거짓말 문화를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인가의 여부는 오직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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