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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물방앗등 이야기
이기화 기자 / 입력 : 2011년 05월 09일(월) 10:57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1)

   

이기화 소장

옛날 모양윤씨(牟陽尹氏)네 본거지였던
학당동(學堂洞) 골짜기에서 발원한 실개천이 모여
고창보통학교 앞마당을 동서로 관류
고창고보 운동장을 휘감아
옛 반룡원(盤龍院)앞 물방앗등에 이르면
둠벙에 물이 채워지고 그 물이 넘쳐나면
물레방아의 육중한 물자새를 뻐그덕거리며 돌려내는 물방아가
사시사철 내내 돌아갔다.
우리고장에도 선사시대 이후 유목생활을 마감하고
백제중기에 도작문화(稻作文化)가 유입되어 정착 영농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주산인 보리와 함께 벼농사를 짓게 되어 절구질하고 맷돌질하는
안착된 생활문화가 전개되면서 영농기술이 비약하게 되어
냇물을 이용, 곡식을 빻아내는 물레방아가 생겨났다
수작업으로 하던 절구질에서 밤낮없이 육체노동에 시달려오던 아낙네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 1850년대 이후 물레방앗간이 도처에 세워져
물방앗간이 생기면서 자생된 주술(呪術) 잡칙(雜則)도 우후죽순 하였다.
물레방앗간에서 아이를 낳으면 사내아이가 생긴다하여
진통이 시작된 산모를 방앗간으로 데리고 와 몸을 푸는 산실이 되기도 하고
아예 방앗간에서 아이를 낳으면 영락없는 아들이라고 해서
희비쌍곡선이 엇갈린 때도 많았다.
밤중이나 새벽에 얼굴을 붉히거나 방황하는 꼴을
물방앗간 근처에서 보는 아낙네나 처녀도 의심투성이로 비치거니와
물방앗간에서 나오는 색시 같다는 둥
물레방아를 남정네의 고추로 유감(類感)한데서 비롯된 민속들이 수두룩했다.
물레방앗간은 주역인 여인네들에겐 훌륭한 정보제공의 보고가 되어
시집갈 처녀에게는 내방(內房)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입살 맞은 아낙네들에겐 입방아 찧는 요람으로써
덜컹덜컹 홈통에 박았다가 다시 쏟아져 흐르는 물줄기가
육중한 물레바퀴를 번쩍 쳐들었다가 쿵하고 확속으로 내리칠 때
디딜방아처럼 방앗공이는 확속의 곡식을 찌어 뭉개면서 짜릿한 전율감을 느껴준다.
(2)
물레방아는 물이 물레바퀴의 위쪽에 떨어지게 만든 것을 윗걸이라하고
윗걸이는 낙차가 좋아 센 힘을 낼 수 있는 산골짜기에 걸맞고
물이 물레바퀴의 가운데쯤 떨어지게 만든 것은 가슴걸이라 하고
물을 물레바퀴 밑에서 퍼 올리게 한 것을 아랫걸이라 하여
가슴걸이와 아랫걸이는 낙차가 적은 평야지대와 염전에서 많이 설치했다.
물레바퀴의 지름이 3.5m, 두께 1m의 물자세[水車]로 대개 짜여지지만
물레방아에서 찧은 쌀은 현미등급이어서 윤기가 번지르르해
밥을 지으면 기름기가 자르르해서 그 맛이 일품으로 참 고소하다.
농사일과 방앗일이 겹쳐지는 농번기에는 밤새도록 방앗간에서 졸음과 상시름판이 된다.
축시 이후에 엄습해오는 졸음 때문에
방앗소리가 부드러운 자장가로 들릴 때 어김없이 이마에 불이 번쩍하기 일쑤다.
날이 새고 보면 얼굴이 뻘겋게 충혈 되고 만다.
쌀한가마 찧으면 방앗삯이 겨우 한 됫박이었단다.
남정네들이 닷새 장에서 새 소식을 얻어 오듯이
아낙네들은 빨래터나 물방앗간에서 소식을 주고받아
물방앗간 풍문이 그럴싸하게 풍성해지면
온 동네가 수군대는 대목걸이 정보통이 될 수밖에….
바윗돌에 곡식 털기, 도리깨질, 홀태질에서 얻어낸 곡식알을
확독갈기, 멧돌갈기, 절구질로 이어내는 아낙네들의 허리는
세월을 헤아리다 보면 너나없이 할미꽃이 되었는데
생활문화의 기술개발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개가를 올리면서
여인들의 휜 허리가 펴지고 한숨과 웃음바다가 뒤범벅이 되면서
푸짐한 추억거릴 장만해 주는 물레방앗간 이야기는
한국을 가장 한국다웁게 손도장 찍을 수 있는 우리들만의 풍물인 것이다.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주> 고창물방앗등 : 옛날 고창현의 반룡원 앞마당에 있었던 물레방앗간(현 수북동 최봉춘 씨댁 남쪽마당, 동국여지승람 고창현조에 재현서(在縣西) 2리(里)라고 등재됨). <편집자 주> 이기화 소장은 고창물방앗등이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져버려, 복원을 건의하고 싶다고 전했다.
※ 확 : 디딜방아 등의 돌. 절구통
※ 축시(丑時) : 밤 1시~3시 사이의 시간

이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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