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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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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회의 문화는 예(禮)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유교사회에서 예는 인간의 모든 면 즉, 개인·가정·사회·국가를 규제하였다. 따라서 예는 생활의 규제자라 할 수 있고, 그 관행은 생활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사회에서 정치의 본령은 예치(禮治)에 있고, 교육의 본령은 예교(禮敎)에 있다. 그리하여 유교의 정치관은 정교일치(政敎一致)에 있다. 다산(茶山)이 그의 역작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지방수령의 첫째 임무는 교화(敎化)에 있다고 주장한 것도 그러한 의미이다.
조선조에 있어서 정치이념은 숭유주의(崇儒主義)였기 때문에 당연히 예치주의를 중히 여겼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 있어서 예의 표현은 교육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고, 그 관행은 기실 교육의 관행이라 할 수 있다.
관례는 성인 의식…남자는 갓 쓰고, 여자는 비녀 꽂아 따라서 여기서는 교육적 관행의 범위를 한정하여 가정교육적 차원에서 한 통과의례로서의 관례, 사회교육적 차원에서 향음주례를 서술하고자 한다.
관례(冠禮)는 유교사회에서 중요한 예속인 사례(四禮) 즉 관, 혼, 상, 제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 『주자가례』 관례조에 의하면, 관례는 남자가 15세~20세에 이르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히기 위해서, 갓[관건:冠巾]을 씌우는 의식으로 되었다. 한편 여자는 15세가 되면 혼인을 정하지 않더라도 계레(笄禮)를 행했다. 계례란 처녀가 처음으로 비녀를 꽂는 의식을 말한다. 남자의 경우인 관례와 대응되는 의식이다. 옛 우리의 풍속은 남녀가 관례·계례 전 까지는 머리를 길게 땋게 하였으며 관례·계례를 행한 후에야 땋아내렸던 머리를 치켜 올렸다. 이로 보면 관례란 혼전의 머리 형식을 바꾸어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이라 할 것이다.
관례를 하나의 성년식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고대 사회 어느 민족에게도 있었다. 우리의 전통적 관례가 조선조의 유교적인 예속으로 존재하여 왔지만, 성년식이라는 형식은 『후한서』 ‘동이전’에 의하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삼한시대에 성년식에 관한 풍습이 나타났고, 문헌상으로는 『고려사』 광종 16년조부터의 왕태자의 관례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고려시대 관례는 주로 왕실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 사대부를 비롯해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전통으로 되어졌다. 그러나 서기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관례의 행사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통을 이어가려는 뜻있는 가정에서는 최근에도 옛날 그대로 관례·계레가 행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관례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서기 1983년 봄의 일이다. 전주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정읍 산외 출신 필자의 전주고등학교 선배인 시산(詩山) 김환재(金煥在) 선생(몇년전 KBS에서 전북어른으로 추대) 댁에서 관례 행사할 때 필자는 찬자(贊者, 행사시 홀기를 맡아 보던 자)로서 참례한 일이 있다. 그 당시 그 분의 조카·손자·손녀들 합동 관례 행사였는데, 그 중 장손은 대만에서 유학중이었고, 손녀 하나는 미국 뉴욕의 한 고등학교 재학생이었는데, 그 날을 위해 귀국하여 행사를 치렀다. 필자가 행사를 마치고 이들에게 행사의 소감을 물었을 때, 그들은 ‘저희들이 청년으로 되어가면서 의미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오늘을 기하여 행동에 조심하며 어른 준비 수업을 스스로 해 가겠다’고 다짐한다는 말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관례 사회·교육적 의미…성인으로 새로운 자각 등을 일깨워줘 관례 행사에 대한 절차는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매우 복잡한 절차가 있다. 그러나 그 중 다음의 절차 몇 가지가 퍽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그 중 첫째가 ‘삼가(三加)’인 바, 이는 관례의식으로 시가(始加), 재가(再加), 삼가(三加)이들은 각기 관자(冠者, 관례 대상자)로 나누어지고 있는 바, 이들은 각기 관자의 예복을 달리 입히는 예이다. 각 예마다 빈(賓, 주례)은 축사를 하는데, 축사내용은 시가에서는 성인으로서의 덕을 지킴에, 재가에서는 위의(威儀)를 지키며 덕을 밝게 할 것과, 삼가에서는 형제가 구존(具存)하면서 덕을 영원히 누리라는 내용이다.
다음은 초례(醮禮) 절차이다. 초례는 관자가 예주(禮酒)를 따라 마시는 절차이다. 초례는 자서의식(自誓儀式)이라 할 수 있다. 초례는 술잔을 주고받음이 없이 혼자 술을 마시면서 의식의 의례를 되새기며, 마음속으로 관례의 합당함을 다짐하는 절차라 할 수 있다. 초례 때에도 빈의 축사가 있다. 초례가 끝나면 빈이 관자의 자(字)를 지어주며 빈의 축사가 있다. 이러고 나서 주인(主人, 관자의 집안 어른)은 관자를 데리고 사당에 가 관례를 마쳤음을 고하고 나면 관례행사는 끝을 맺는다.
이상으로 관례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관례는 실제적으로 그 예행절차가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관례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교육적 의미가 있다.
첫째, 관례는 경과의례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 『사례편람』의 말미에서 “관례는 이로써 성인(成人)의 도를 권장하는 것이니 장차 아들이 되며, 신하가 되며, 동생이 되며, 남의 어린 사람이 되는 행동을 그 사람에게 전하게 하는 것인즉, 예가 관례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기술한 바와 같이, 젊은이에게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자각을 심어주는 교육적 의미가 있다.
셋째, 관례행사 전·후에 사당에 고하는 것은 한 가정에서 선영(先靈)과 관례자가 관계 내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시킴으로서 항상 선영을 받들고 조상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존재는 조상과의 연계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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