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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화 (고창지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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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내 동산물 잔등을 넘어서면 닭우리 못가서 양곡(陽谷) 남쪽의 비학산(飛鶴山) 언저리 유점(鍮店) 고랑 물이 넘쳐흘러 노동(蘆洞) 저수지를 채웠는데 그 동쪽 산자락에 서향으로 안대한 갈울(蘆洞)마을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단종 왕위가 세조에게 찬탈 양위가 되자 숱하게 많은 충신들의 핏살이 얼룩으로 덮치면서 밀양박씨 돈재공(豚齋公 朴衍生)도 담양 땅으로 은신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정을 내세워 요지부동하였는데 장성땅 아치실(阿谷)로 옮겨살던 그 증손(朴李宗)이 1497년 스물다섯살 때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을 예지하면서 칩거지를 찾아 이곳에 은둔한 이래 18대를 자작일촌(自作一村)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어느 식자가 갈월운형지국 좌학지대(葛月雲形之局 坐鶴之台)설을 인용 마을 이름을 갈월(葛月)로 개칭하더니 고종조때 반식자 우환의 갈등이 또 일어 성동(城東), 행정(杏亭), 갈울 마을을 아주 갈대골(蘆洞)로 둔갑시켜 1914년 통합조정할 때 노동리로 개명한 것이다. 허나 우리 땅 이름의 뿌리는 이두문(吏頭文)에서 캐내야 한다. 「갈」은「풀」의 옛말과 말 뿌리가 같아 흔히 낙엽을「갈비」라고 일렀다. 「갈」은 나무의 옛말이며 「비」는 불(풀·草)과 그 뿌리가 일치하여 「갈울」은 나무가 울창한 숲의 표현이 정칙인 것이다. 하여 「갈울 마을」은 숲이 빽빽이 우거진 마을의 순수한 우리말 원어임을 유래로 밝혀둔다.
※ 비학산 - 고창 화산마을 동쪽에 있는 장문산(長汶山)의 북쪽 중봉산 자락 ※ 닭우리 - 양곡 동쪽마을이름 ※ 유점 - 화산마을의 옛 지명 ※ 갈월 - 갈울 마을의 뒷 이름 ※ 노동 - 갈울 마을의 개명된 현재이름
이기화(고창지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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