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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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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쓴 편지가 그리워서 내가 내게 한 통을 써서 부쳤더니 이틀만에 배달되었다. 아하, 아하, 신난다. 재밌다. 살아도 좋다는 면허증이 배달된 것만 같다. 심심해 죽겠다던 너, 너도 한 번 해보렴. 어떤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에 이런 낙서 같은 글을 올렸더니 어느 하루 홀연 쪽지가 왔다. 주소를 알려달라고, 그러면 편지를 보내겠다고. 장난인가, 하다가 그렇다면 나도 장난 한 번 해보자, 해서 주소를 알려줬더니 정말로 편지가 왔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그것도 저 멀리 바다 건너 호주에서.
안녕하세요.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글자의 형태와 그 내용으로 미루어 소녀임이 분명했다. 소녀의 순수성이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글자, 그 내용, 아 참 오랜만이다. 이런 서정 아니 정서는.
고마워서 냉큼 답글을 쓰고자 하는데, 그런데, 이런, 이런, 이를 어쩌나. 주소는 조합이 제대로 된 것 같은데 이름이 없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냥 HEE. 이렇게만 되어 있다. 편지를 보내준 이의 이름이 통째로 그냥 HEE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어떻게 그런 이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럼, 그러면 뭐지?
주는 것은 좋지만 받는 것은 안 좋다? 보내는 것은 좋아하지만 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보지만 마침표를 찾을 길이 없다. 커닝이라도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다. 표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텍스트가 없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등등의 내용으로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더니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누군가로부터 엽서나 편지를 받는 행복감을 잊은지 오래됩니다. 편지함엔 세금고지서나 백화점 홍보물, 대출정보 같은 광고지만 잔뜩 쌓여 있지요. 누군가에게 정성어린 편지를 받는다는 거, 아주 먼 달나라 애기처럼 들립니다. 나무꾼과 소녀. 아니 소녀와 나무꾼. 행복하시겠군요.^^”
이 답글에 덧글을 썼는데 그 내용이 이랬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필경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보다 편리한 삶을 위해 고안되고 기획되고 실행되는 시스템들이 그 목적에 부응하는 반대급부로서 인간의 소외감을 요구한다는 거죠. 하긴 그 무엇이라고 그냥 주어지기만 할라구요.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아마도 소위 진리라는 것이겠죠. 허나 우리 사회는 포기 없는 얻음만을 갈구하는 욕망의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혼돈이라고나 할까….ㅠㅠ 날씨도 좋은 날에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려 하는군요. 죄송.”
그 뒤로도 서너 차례 더 편지가 왔다. 한 번은 편지봉투 안에 꽃씨를 담은 작은 비닐봉지가 넣어져 있기도 했다. 그 꽃씨를 마당에 뿌렸더니 보라색과 파랑색 그리고 핑크빛의 작은 꽃이 피었다. 꽃이라면 다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그 꽃을 보시며 “어매 이것이 믓이다냐. 처음 보는 꽃이네. 이쁘네”하시며 몹시 좋아하셨다.
그날로부터 5년, 금년에도 그 작고 ‘이쁜’ 꽃들은 피었다. 어머니는 그 꽃을 못 보신 채 병원으로, 그리고 돌아가셨다. 빗속에서 점차 시들어가는 작은 꽃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가 자꾸 울컥거린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한 가지라도 잘한 일이 없지도 않으련만, 이상하게도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못한 일들만 삼천 가지도 넘게 머릿속을 떠돈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나를 반성하게 하는 소녀, 꽃씨를, 편지를 보내준 그 소녀와의 인연은 5년 전 그때 이미 끊어졌다. 미안하다. 편지를 받기만 하고 보내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로 끝냈으니 이런 미안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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