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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 낮은산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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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해 두 가지 중요한 명절이 있어요. 하나는 까치까치 설날, 하나는 한가위 추석이에요. 한해를 맞는 설과 한해를 잘 거두는 추석, 시작과 마무리로 대구(對句)가 맞기도 해요. 설은 설대로, 한가위는 한가위대로 시절을 대표해요. 두 명절 모두 우리 선조들이 바탕에 둔, ‘나누다’는 마음이 담겼지만, 아무래도 한가위 추석이 훨씬 더 강해요.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어요. ‘나눔’에는 ‘콩 한쪽도 나눈다’ 해서, 나누려는 사람이 꼭 가득차 있을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내가 넉넉해야 나누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또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무래도 주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한가위 보름달을 떠올려 보세요. 빈틈없이 한가득 채워있지요. 거기서 무언가를 덜어내려면, 많이 아쉽고 허전하죠? 그런데 자연은, 세상의 법칙은 한편 ‘냉혹’해요.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이울어 반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어, 사그러 들어요. 그렇게 작아지고 끝나면 ‘이야기스럽지’ 않겠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점점 자라서 보름달로 가득차게 되니까요. 이것이 나눔의 묘미예요.
명절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적어도 추석을 앞둔 두 주 전부터, 고속도로가 꽉 막히는 걸요. 주말에 책마을을 오가는 손님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어요. 그래도 고향의 부모님과 명절을 앞당겨 보내려는 ‘자식’들의 귀한 마음을 알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요.
추석을 일찍 보내는 것은, 조상님들 산소를 다듬는 벌초와 겸하기 때문이에요. 해리면 소재지에 유일한 병원이 있어요. 현대의원이에요. 예취기 날을 바꾸다 날에 손을 조금 베었어요.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흔드는 ‘모관운동’을 해서, 벤 상처도 붙고 피는 금세 멎었지만, 파상풍이 걱정이라고 해서, 병원을 찾은 거예요. 예취기 날에 다친 어른들이 줄을 서 계셔서, 제 상처는 ‘명함도 못 내밀고’ 구석에서 기다려 치료했어요.
책마을로 돌아오는 좁은 길, 길을 건너려다 멈칫거리는 작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새끼 꿩 일행이었어요. 새끼 꿩을 뭐라 부르는지 기억해요? ‘꺼병이’예요. 갑자기 멈추지 못해,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났어요. 엄마 까투리는 어딨을까,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물론 그 친구들은 우리 차에 많이 놀랐겠지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읽을 책은, 권정생 선생님이 글을 짓고, 김세현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엄마 까투리>예요. 슬픈 이야기랍니다. 산불이 난 산에 아홉 마리 새끼 꿩 병아리(아까 살펴보았죠? ‘꺼병이’예요)를 키우던 엄마 까투리는, 그 뜨거운 불을 피해 혼자 도망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산불을 맞아요. 재가 되고 말지요. 그러나 그 품에서 아홉 마리 꺼병이들이 무사히 살아난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아홉 마리 들은 자라서 어른 꿩이 되었지만, 엄마까투리가 죽은 그 자리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옵니다.
우리가 왜, 그나마 명절이라고 이름을 붙여, 부모님과 그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향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나요?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나누어 가진 것이 정말로 많기 때문이에요. 올 한가위, 사촌이건 육촌이건 형제들과 신나게 놀 생각도 좋지만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감사한 마음 한켠에 챙겨보세요.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한가위의 미덕이니까요.
이대건(도서출판 나무늘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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