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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장 유점동 (전 고창전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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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값이 한풀 꺾였다. 만오천원 한다기에 ‘뭐 그리 비싸’ 하는 동안 이만원을 훌쩍 넘더니, 수요가 줄어들어 이제는 값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품귀현상으로 돈을 주고도 사기가 힘들고, 지난 ‘해풍고추축제’에서도 하루만에 동이 나버렸단다. 해마다 해풍고추를 사달라고 부탁하던 ‘진해’ 사는 6촌동생도 엄두가 나지 않는지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밝혀진바 없지만, 대략 남령초(南靈草)라 불리던 담배와 거의 같은 시기라 한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으나, 일본의 여러 문헌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조선의 고추가 일본으로 건너갔음이 분명한 듯하다.
고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식탁의 절대적 터줏대감인 김치에 고추가 빠졌다면 어찌되겠는가. 시쳇말로 ‘불 꺼진 항구’가 아니겠는가. 모든 탕과 국 종류에 그리고 온갖 반찬에 고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해풍고추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고창의 특산물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저 멀리 ‘진해’에서도 해풍고추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이를 확인한다.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사람의 지도자가 지역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주막집 하나에 구멍가게 하나,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만 덩그러니 자리잡았던 정읍시 산외면소재지에 때 아닌 광풍이 부는 것은, 산외면의 경제를 살리고자 저가쇠고기 판매를 시작해보자는 면장과 주민들의 의식전환에 의해서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적 규모의 유명한 쇠고기 판매명소가 되었다.
우리의 해풍고추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브랜드가 당시 면장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도전정신, 불타는 추진력이 없었다면, 보다 활성화되어 고창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전국에 이름을 날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면장이야 임명제이니 그렇다 치고 선출직 지도자가 끼치는 지역사회의 파급결과는 엄청난 것임에도, 우리는 선거를 함에 있어 혈연과 지연, 학연들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전국에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지방수령들을 보면 차별화된 시각, 남보다 다른 창의력과 선견지명, 그리고 목표를 향한 정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웅변으로 증명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사는 것도 인생인 모양이다.
집안 작은 텃밭에 해마다 고추 400여 포기를 심어 식구끼리 소비한다. 올해는 봄의 기온이 낮았고 여름 내내 내렸던 비로 발육이 좋지 않았음은 물론 병충해까지 극성을 부리는 와중에, 세벌을 따내고 나니 더 이상 수확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을채소를 심기위해 뽑아야하는 고추포기에서, 두 바구니 쯤 성한 고추를 따낸 집사람이 연방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오매 옴팍 허네!” “오매 옴팍 허네!”
작은 것에 대한 만족은 메마른 세상살이에서 꼭 필요하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산다 하겠다. 특히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은, 상실과 고독과 병마와 공허를 겪으며 많은 위험에 노출된 지금의 노인세대들이 반드시 가져야할 가치요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래야 병 없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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