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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똥을 눌 테야》 박성근 글·윤정주 그림 웅진주니어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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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책마을에는 네그루 은행나무가 있어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치 웅장해요. 운동장 가에 나란히 서서 제 늘름한 덩치를 뽐내는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옛 학교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해요. 네그루 은행나무에도 가을이 왔어요. 이파리 색이 벌써 노랗게 물이 들었냐구요? 아니에요.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기 전, 가지마다 주렁주렁 노랗다 못해 주황빛 알들이 달렸어요. 은행열매들이에요. 며칠 전 비가 흩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그 바람에 은행열매가 많이 떨어졌어요.
이번 주엔 책마을 자료관 바닥공사(‘공구리’를 친 뒤, 그 위에 투명 에폭시를 입히는 일이에요. 시멘트 옷을 입은 바닥이 훤히 비치면서 조금 말랑말랑하게 되는 거예요.)하는 틈틈이 은행열매를 주워 모았어요. 작은 마대자루로 한 자루가 가득 찼어요. 아직 말랑말랑한 껍질을 비벼서 벗겨내고 딱딱하고 뽀오얀 속살을 보이는 녀석들을 운동장 한켠에 말려놓았어요. 냄새 고약한 이 일을 하면서, 은행 알을 뭐 하게요. 은행열매는 여러 가지로 몸에 좋아요. 특히 기관지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특효지요.
얼마 전에 경북 예천에 다녀왔어요. 종가음식 취재하는 길이었지요. 초간 권문해 선생에서 대를 이어온 종가 댁의 상차림을 살펴보러 갔던 거예요. 일흔두 살 노종부께서는 시집을 오자마자, 기침병이 심한 시할아버지를 위해 새벽마다 작은 상을 하나씩 차렸대요. 은행과 대추, 여린 대나무 이파리 같은 것들을 넣고 푹 고아낸 물과 입가심하도록 강정 몇 가지를 곁들여서요. 거기서 보았던 은행 알이 떠올라요. 은행의 딱딱한 속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넣어 고아낸 물, 새벽바람으로 새색시가 눈 비비며 차린 그 상에서 종가의 고단한 며느리 일상도 함께 떠올랐어요.
다른 은행나무 이야기랍니다. 우리 고장을 알리는 대표 인물 가운데, 신재효 선생님이 계셔요. 판소리가 오늘까지 단단한 차림으로 전해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시죠. 그분의 호가 바로 동리(桐里)셨어요. 그 분의 호를 딴 문학회가 있었어요. ‘동리문학회’라는 모임인데, 고창지역 고등학생들이 참여해 시나 수필 같은 글을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눴지요. 그 모임의 상징이 노랗게 잘 마른 은행나무 두 장을 거꾸로 붙여놓은 것이에요. 선배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신재효 선생님 댁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대요.
오늘은 은행나무 이야기가 길었어요. 정신차려보니, 갑작스럽게 가을이 깊어졌지요. 자칫 기온차가 큰 이 때, 그림책에서 살피는 건강 이야기를 찾아요. 오늘 읽어보는 『황금똥을 눌 테야!』가 대표적인 그림책이에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잘 먹고 잘 누는 것이에요. 좋은 음식,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잘 조리해 천천히 오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잘 ‘싸는 것’이에요. 이 책이 바로 그 잘 ‘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이에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창 ‘똥’이야기가 유행인 적이 있어요. 무언가 잘 누는 일이 아이들에게도 본능적으로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 분명해요. 주인공 민이와 황금똥캐릭터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잘 ‘누는 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잊지 마세요. 하루에 한번 이상, 꼭 잘 누세요. 뭔가 나를 위해 챙기는 것만큼 꼭 뭔가를 버려야 한다, 나아가 잘 베풀어야 한다는 깊은 뜻도 찾아보세요.
이대건(도서출판 나무늘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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