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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에
나카무라 기자 / 입력 : 2011년 10월 05일(수) 10:05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얼마 전 필자의 손에 오래된 한 권의 책이 들어왔다. 그 책은 1924년에 조선총독부가 출간한 <조선의 풍습>이라는 약 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이 기술하였으며, 일본인의 눈에서 본 한일 간의 문화의 차이를 지적하여, 문화차이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을 해소시키기 위해, 조선인의 행동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까지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을 잘 모르는 일본인을 위해 조선을 소개하는 팜플렛 같은 것이다. 또한 조선의 사회계급, 가정의 의미, 남녀의 차이, 언어사용, 손님에 대한 접대, 복장, 음식, 집, 계절행사 등 서울의 실제생활을 근거로 기술되어 있다.

식사할 때마다 밥을 새로 짓는 조선의 습관이 당시 일본인에게 얼마나 놀라움의 대상이었는지, 이 작은 책 속에도 두 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대개 일본에서는 아침에 한 번 밥을 지으면 그 후는 찬밥을 먹는다. 조선인의 음식문화는, 아는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일본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어느 면에서는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인 필자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고 또 놀라운 자료였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이 100년 동안 이렇게까지 변했다는 것에 놀랐다.

한국의 식사문화는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식탁에서도 아버지가 드시기 전까지 아이들이 먼저 먹으면 안 되고 가장이 식사 끝날 때까지는 일어날 수도 없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아이가 가족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한국의 가정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아이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먹든 안 먹든 아이는 먼저 먹고 학원에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100년 전 한국가정에서는 가장이 집에 들어오면 모든 식구가 나와서 함께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읽으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한 친척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집에 와서 현관까지 제일 먼저 마중 나오는 것은 강아지밖에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의 아내는 티비 연속극에 빠져있고, 아이들은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이 알고 있는 한국은 ‘유교의 나라’이며 현재도 그렇게 산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서 버스 한 번 타면 한국의 진실을 알게 된다. 노약자석을 차지하는 사람은 초중학생들이 많다. 많은 성인들은 ‘이 학생들이 공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노인보다 더 지쳐버렸을까’ 하는 생각에 노약자석에 앉아 졸고 있는 학생들에게 “젊은 사람이 뭐야! 어서 일어나!”라고 혼을 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100년 전의 한국인이 봤으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옛사람들의 문화에 관련해서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단기간의 근대화로 인해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필자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르신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들만 특별히 예뻐하시는 할아버지나,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키면 안색이 변하는 할머니에 대해서도 화가 나는 것은 없다. 그냥 그러한 행동을 보면 “교육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맞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시대가 변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즘은 맞벌이부부가 대부분이고 남자가 집안일에 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라는 말을 듣는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대의 여성들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은 남성을 결혼상대로 선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100년 후라면 우리 증손자 세대이다. 우리 후손들이 봤을 때, 지금 21세기의 한국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는 100년 후에 자손들에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사셨다”라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며, 이를 위해 보편적, 장기적, 영속적인 관점에서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카무라 에미코(中村 惠実子) 씨는 일본어 강사와 통·번역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고창읍에 살고 있다.

※다음은 이 글의 일본어 원본입니다


100年後に

   

나카무라 에미코
(中村 惠実子)

先日私の手にある古書籍が舞い込んだ。1924年朝鮮総督府刊行「朝鮮の風習」という約50ページの小冊子である。これは日韓併合から10年を過ぎ、先に韓国に移り住んでいた日本人(当時は内地人と呼ばれた)の目から見た韓国の姿である。日本人の目から見た日韓の違いを指摘し、文化の違いから起こる摩擦を避けるために、朝鮮人に対する適切な対処法まで提示してある。朝鮮のことを良く知らない日本人のために朝鮮紹介の一躍を担ったパンフレットのようなものである。朝鮮の社会階級から、朝鮮における家庭の意味、男女の別、言葉づかい、接客、服装、飲食、住居、年中行事などについて、ソウルでの見聞を元に細かく書かれている。

朝鮮では、食事の度にその都度、飯を炊くことには、当時の日本人がよほど驚いたのか、たった50ページの小冊子のなかで二度もそのことに言及している。(日本では朝炊いた飯を冷えたまま食べていた。)また、知り合いの家で食事をご馳走になっても、特別な場合でなければ、特別礼をいう必要はない等、日本とは食文化だけとってもかなりの違いがあり、ある面では正反対である点もあるので、心するようにと書かれていたりもして興味深い。

現在韓国で生活する私にとってはこの上なくおもしろい資料である。そしてまた、韓国はこの100年で、ここまで変化したのかという驚きを喚起する資料でもある。私の義父義母はまさにこの時代に生まれて教育を受けた方である。義父は数年前亡くなられたが、生前テレビにでてくる女性芸能人がノースリープであると「服も着ないで人前にでている!」と憤慨していた。義母は今でも嫁達が、短いスカートを着るのを好まない。

 1920年代の朝鮮の女性は家の奥深くこもっているのが常であったという。来客が夫の友人であったとしても、親しく言葉を交わすことが憚られる時代。また、年長者への敬意が絶対視され、食卓で、家長が箸をとるまでは、何も口にすることが許されず、家長が食べ終わるまでは席を立つことも許されずという習慣も描かれている。現代韓国では「子供が一家の中心」になってしまい、また塾通いに一番時間が切羽詰まっているのが子供なので、主人が食べようが食べまいが、子供たちはさっさと食べて塾に行く。また、100年前の朝鮮では、家長が帰宅すると全員で出迎えているという記述がある。ふと、あるソウルの韓国人サラリーマンが言った言葉を思い出す。「私が帰宅した時に迎えてくれるのは犬だけ、妻は妻で連ドラに見入って気づきもしないし、子供は部屋でなにしてるんだか、出ても来ない。」韓国はこの100年でこれほどまでに変わってしまったのかと感慨深い。

日本人にとっては、韓国は未だに「儒教の国」であり、現在でもその伝統が美しく残されているのだろうとイメージされているが、現在ソウルでバスにのると、シルバーシートにすわって動かないのは、塾通いで疲れきった小学生や中学生である。あまりにも忙しそうで、その疲れ方が老人以上であるせいか、「けしからん、若い者が、立ちなさい!]という人は誰もいない。こういう現代韓国のあれこれを、韓国で多く目にしてきた私は、100年前の韓国人がこの現代の姿を見たとき、どれほど驚くだろうかと思う。

 

日本も同じように近代化の波を受け、短期間ですべてのものが変化してきた国ではあるが、

その変化はもう一代先の世代が経験したので、私の父母の世代というのは、韓国のこの一世紀における変化よりも緩慢であったと言える。多くの韓国人がそう思っているように、私も、現在高齢になられた方に変化を求める気はおこらない。年輩の方でも、若者に理解のある方はいらっしゃるが、すでに80代を過ぎた方々に、現代社会への理解を望むのは難しいと思う。男の子だけを可愛がるというお祖母さんも、夫に家事をさせるととたんに不機嫌になるというお祖母さんに対しても、腹が立つことはない。

 ただ、そういう方々の姿をみると、「教育というのは、実に大事で、小さい頃に受けた教育や環境というのは、無条件に体の中に染み込んで一生ついてまわる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が良く分かる。これほど時代が変わり環境が変わっても、自分が変わることは難しいようだ。「男は家のことを何もしなくて良い」と言われ続けて小さい頃から育てられた男性は、やはり成長してからも家事に無頓着になるかもしれない。共稼ぎ夫婦の多い現代社会ではそういった男性は、結婚の相手としては選ばれにくくなってしまったのは自明のことだ。100年後といえば、私たちの孫の時代だ。この21世紀の韓国の生活は、未来の子孫の目にどう映るのだろうか?出来ることなら彼らから「お祖父さん、お祖母さんはちゃんと暮してた」と言われたいものである。そのためにも永続的、普遍的、長期的な視点を持つことを平素に心掛けたいと思うのである。

나카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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