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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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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金性洙, 1891~1955)의 친일 논쟁이 법원 판결로 마침내 일단락됐다. 이번 판결이 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새로 나올 증거나 다툴 만한 사안이 별다로 없다는 점에서, 이후 상급심에서도 1심과 유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조일영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20일(목) 인촌기념회,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47) <동아일보> 사장 등이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소송’에서 “일제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는 부분을 빼고, 나머지 부분은 친일행위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규명위)는 ‘보고서’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조항 가운데 3개 조항을 적용해, 인촌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다. “인촌,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 친일규명위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2010년 1월 법원에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소송’을 냈던 것이며, 그에 대해 법원이 근 2년만에 판결을 내린 것이다.
우선 재판부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일 뿐, 인촌이 친일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인촌은 1938년부터 1944년까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발기인·이사·참사 및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는 글들을 <매일신보>에 기고했다”며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으로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활동내역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등은 중일전쟁 이후 침략전쟁이 확대되자,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해 만든 전시 최대의 관변기구이다. 인촌은 이 연맹의 간부를 지내며, <매일신보>에 ‘조선을 사랑하는 총리의 지도에 따라 2600만은 더 한층 지성봉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 등을 기고했다.
또 인촌이 ‘징병제도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해 징병·학병을 찬양하고 선전·선동한 사실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징병제도실시 감사축하대회’를 말하는 좌담회에 참석하고, <매일신보> 등에 징병·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다수의 글을 기고했다”며 “일부 글은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등 그 글들이 모두 허위·날조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결했다.
김재호 사장측은 친일규명위의 판단 근거가 된 <매일신보> 등의 자료가 과장·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 사장 쪽이 제출한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로 <인촌 김성수집>을 제출했지만, 이는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원고의 재단에서 출간한 것으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인촌의 행적과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많아 모두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1941년 인촌이 친일단체 위원으로 선정돼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와 황민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는 부분은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며 “인촌에게 특별법 제2조 13항을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인촌이 ‘일제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이름이 올라있지만, 일제 내선융화 및 황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구체적인 친일행적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보적인 판결을 낸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0년 말 국가보훈처는 친일전력이 확인된 장지연 등 독립유공 서훈자 19명에 대해 서훈 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올해 4월 국무회의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인촌 김성수는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서훈 취소 대상자에서 빠졌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취소 여부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또한 지난 6월 23일 항일운동단체협의회가 지난 6월 23일 고창군청에 공문을 보내 “고창군청이 친일파로 분류되는 김성수의 호를 따 도로명을 부여한 것은, 친일파를 옹호하고 순국선열들의 넋을 짓밟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도로명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당시 고창군 담당자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도로명주소위원회가 심의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법적으로 도로명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3년마다 돌아오는 법적 변경기간에) 주민 20%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1심 판결에서 인촌이 친일행위자로 판결됨에 따라, 군수 직권으로 도로명을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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