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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화 (고창지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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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에서 서산을 넘어 운곡 고랑에 이르면 송나라 유학자 주자(朱子)의 태생지와 흡사하다 하여 안휘성(安徽省) 휘주(徽州) 무원현(武源縣) 주희(朱熹)마을의 고유한 지명을 그대로 본떠 옮겨 놓았다.
한족(漢族)의 정치적 종말이 고해진 명(明)나라가 망한 뒤 투철한 이 고장 선비들의 숭명(崇明)사상과 사대(事大)의식 발상의 부산물이다.
고창읍에서 서녘의 회암재(晦庵峠)를 넘거나 행정(杏亭)고개 마루를 넘거나 성틀봉 동쪽 잔등인 서남재를 넘거나 어느 고개를 너머서든 오뱅이골짜기에 나선다. 여기에서 백제 때의 야철지(野鐵地) 병목 길을 내려서면 이름하여 운곡(雲谷)리 정촌(丁村), 신기(新基)리 신안동(新安洞), 용계(龍溪)리 용안(龍安)동, 그리고 안덕(安德)리로 빠져나가는 오뱅이골 길목에 이르는데 이 골짜기를 옛날부터 오뱅이골로 불렀다.
조선조 후기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치른 뒤 만족(蠻族)인 청나라가 들어서자 거유(巨儒) 김종직(金宗直)의 후손 선산(善山)김씨들이 운곡 고랑에 숨어들면서 이 골짜기의 산세가 주자촌의 지형과 비슷하여 땅이름을 그대로 옮겨 부른 사연의 흔적으로 지금도 봉우리나 고개, 골짜기, 이름들에 그대로 묻혀있어 역사적으로 치욕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지명임을 명심해 두자.
(주1) 오배이골은 오뱅이골(五方洞)의 와전임. (주1) 朱子: 本名-熹, 字-元晦, 號-晦庵, 宋代大學者(南宗의 碩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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