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기에 한창인 고창풍경 지금 김장하는 모습을 고창의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창 각 집들의 대문 앞에는 배추가 높이 쌓여 있기도 하고, 소금에 절인 배추를 잔뜩 담은 욕조 같은 커다란 대야, 배추를 물로 씻은 뒤 물기를 빼고 있는 아줌마들의 모습,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에선 오랜만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골목길 주변에는 배추 찌꺼기가 썩은 물이 흘러 나온다. 김장 때문에 오랜 만에 온 식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읍내 곳곳의 쓰레기장에는 김장을 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매일 산더미처럼 싸여 있는 모습도 흔한 정경이다. 이곳저곳에서 김장했다고 나눠준 김치가 동네의 이웃집들로부터 들어온다. 고창의 집집마다 다른 김치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 집 김장 지금은 필자의 집에서 김장을 하는 중이다. 시어머니는 나이 때문에 이제 김장을 하실 수 는 없다. 시누이가 중심이 되어 김장을 담는다. 오늘은 모든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 내일은 배추를 씻어 물기가 빠지면 오후에는 양념을 버물릴 것이다. 올해는 배추가 300포기 준비되었다. 도시에 사는 식구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많은 양을 담는다. 사람들이 <김치 공장을 열었어요?>라고 웃으며 지나간다. 김장은 대단한 중노동이다. 필자는 고창에 살게 된 후 지금까지 두 번 김장을 도와드렸다. 김장이 끝난 후 일주일은 몸살이 나 집안의 모든 일이 하기 싫어졌다. 필자가 김장을 담글 때 하는 일은 그냥 도우미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김장을 할 수 있는 기쁨 필자는 한국의 풍습 중 현대의 사정에 맞지 않은 것은 간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러나 왠지 김장에 관해서는 간소화 하자는 비판을 할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김장을 담는 여성들이 <힘들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기뻐하는 마음을 필자가 느끼기 때문이다. 올해도 무사히 김장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만족감이 함께 일하는 필자에게도 전해온다. 고창에서 김장을 담그는 여성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김장에 비교되는 일본의 행사 필자가 김장 이야기를 일본의 친정어머니께 전화로 말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모습은 옛날 일본에서 연말 떡을 쳤던 모습과 닮았다.> 일본에서는 설날을 맞이하기 전에 집집마다 많은 떡을 쳤던 것이다. 떡값으로 가정에서 따로 예산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직장에서는 떡값으로 연말에 임시 보너스가 나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가정에서 떡을 치고 해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안정과 가정 안정의 상징이었다고 어머니는 가르쳐 주셨다. 치는 떡의 양이 너무나 많아 결국 못 먹고 곰팡이 나서 버리게 되는 것도 김장김치와의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주는 기쁨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 일본 가정에서 떡치고 해를 넘어가는 습관은 거의 서라졌다. 한국보다 조금 먼저 근대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식구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행사가 한국보다 빨리 사라진 것이다. 한국도 해마다 각 가정마다 김장 규모는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 것과 같다. 김장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갑자기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따져보면 김장이 합리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많은 비용을 들여, 김장 때문에 며칠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사 먹는 것이 오히려 싸다. 시골에서 얻어먹는 것 보다 마음이 편해!>라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장이라는 풍습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도시에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보내 주고 싶다.> 김장을 하는 시골 어머니들의 미소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에게 힘을 준다. 시골 어머님들에게 있어서 김장은 자신이 줄 수 있는 힘을 확인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행복감과 중요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에미코(中村 惠実子) 씨는 일본어 강사와 통·번역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고창읍에 살고 있다.
※다음은 이 글의 일본어 원본입니다
キ厶ジャンの季節
キ厶ジャン真盛りのコチャンの町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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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에미코 (中村 惠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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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厶ジャンの光景が町のあちこちで見られる。入り口に白菜を積み上げてある家。塩漬けにした白菜をザルに積み上げて水気を切っている家。独り暮らしの老人の家から子供の声が聞こえて門の下から大量の水が流れ出してくる。キ厶ジャンのために家族が集まっているのだなと分かる。ごみ捨て場には白菜の屑が山のように積まれている。この時期、あちらの家からこちらの家からキ厶ジャンのお裾分けが届く。家ごとの味の違いを食べ比べてみるのは楽しい。
わが家のキ厶ジャン
わが家は現在キ厶ジャンの真っ最中だ。義母は年齢と体調のせいでもうキ厶ジャンには関われない。夫の姉達が中心になってキ厶ジャンを切り回す。本日塩漬けが終わった。明日の午前には白菜を洗って水切りをし、午後には薬味を混ぜ込んでいく。今年の白菜は約300個だった。都会にいる親戚に送るためにわが家では大量に漬ける。道行く人々が「キムチ工場始めるつもりかい?」と笑って通り過ぎていく。キ厶ジャンは大変な重労働だ。私は過去二年田舎のキ厶ジャンに関わったが、終わった後の一週間は疲労と脱力感で家事を何もしたくなくなった。私はただのお手伝いくらいのことしかやってないのに。
キ厶ジャンが出来る喜び
私は韓国の風習の中であまりにも現代の事情にあっていないものは簡素化する方が良いと常に思っているが、キ厶ジャンに関しては、批判する気があまり起きない。一年に一度、この行事をすることに「大変だ大変だ」と口にしながらも人々が喜びを感じていることが分かるからだ。今年も無事にキムチをつけることが出来た幸せを感じていることが、キ厶ジャンの作業を共にしながら伝わってくる。キムチをつける女性の顔は満足そうである。
キムジャンに相当する日本の習慣
私がこのキ厶ジャンの光景を日本の母に電話で話したところ、「ああ、それは日本で昔年末に餅をついてた姿と良く似ているわ」という。日本の正月は新暦で祝うが、年越しの前に、大量に餅をついていた。餅をつくための費用として家庭で予算枠を設け、正月の餅代の足しにでもといって勤め先からボーナスのような臨時収入が入ることもあったそうだ。家庭で餅をついて年を越せるということが、経済的安定と家庭の安定の象徴だったのだと母は言う。餅が多すぎて、結局食べきれず、カビが生えて捨てることになったこともキムジャンとの類似点かもしれない。
あげる喜びを実感できる場
日本で各家庭餅をついて年越しをするという習慣はすっかり廃れてしまった。先に近代化が進んだ日本では家庭の連帯を確認する行事が韓国以上に少なくなっている。キムジャンもどこの家庭でも年々規模が小さくなる傾向があるようだ。キムジャンの中心になる人の健康状態の如何では突然やれなくなることもある。合理的か非合理かで考えるとキムジャンは決して合理的とは言えない。お金は掛るし、キムジャンのため何日も仕事する。「キムチは買った方が安い。買った方が気が楽」という意見にも一理ある。しかし私は個人的にはこの季節行事の存続を願っている。「都会の息子に美味しいキムチを食べさせてあげたい」田舎のオモニ達の幸福な笑みが、私にそう思わせる。誰かに何かをしてあげられる喜びは確実に人に力を与える。田舎のオモニ達にとって、キムジャンは自らの力を確認することで自分の幸福と重要感をを実感できる大切な場なのではない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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