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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일 (전교조 고창지회장 고창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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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결국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주위 사람들 표정도 ‘늘 있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특히 우리 고창 지역처럼 농촌인 경우는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농축산업 현장은 벌써부터 한숨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두려움이 더욱 크다.
한미 FTA를 쉽게 말하면 한국과 미국의 기업들이 다양한 재화나 용역을 팔거나 자본을 투자해서 이윤을 내야 하겠는데, 세금을 비롯하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들이 너무 많아 서로를 힘들게 하니, 그것들을 없애서 서로의 체질을 같게 만들자는 작업이다. 이것은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패권을 유지하고 중국을 자본주의화시키는 환태평양 전략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이기도 하다.
드디어 우리 나라가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 편입을 위해 뼈 속까지 내어 줄 처지가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번 비준안 통과 시에 쟁점이 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조항은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인데, 한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 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다. 이 제도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다.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 조항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현 정부에 대한 우리 농촌은 허탈감을 넘어서 배신감과 분노가 일어난다.
문제는 경제 영역만이 아니다. 문화를 비롯하여 각종 투자가 가능한 교육 분야도 심각하다. 협상 타결된 교육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일단 미국 영리 법인의 한국 시장 진출을 예상할 수 있다. 다행히도 초중등교육은 대상이 아니지만 대학은 가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 대학과 공동 학위 수여가 가능한 대학이 등장할 것이며,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직접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인지 따져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영어 교육이 절대적인 영향아래 있는 경우는 미국의 영어교육 시장 진출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농촌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할 것이다. 우리 지역 학생들의 문제점 중 하나가 영어 실력이 아니었던가?
자유무역협상에 교육이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교육이 이미 무역의 대상이며,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FTA로 인해 교육이 개방된다는 것은 국경이라는 시장의 장벽을 넘어 교육이 상품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다.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공공 부문인 교육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교육 기회의 차별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각 지역의 조례의 보호에 따라 각 학교에 공급되는 지역 농축산물도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교육 현장이 어디까지 바뀌게 될 지 예상하기 힘들 정도다.
가뜩이나 공공성이 취약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교육의 시장화 · 영리산업화는 학문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며, 대학서열체제의 강화, 한국 공교육의 골간 붕괴를 초래한다. 대학서열체제인 학벌사회에서 입시경쟁은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전쟁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하기에 이 과정에서 각 개인과 가정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미 FTA는 교육으로 인한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의 대물림을 한층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의료와 교육 등 사회공공서비스의 시장 개방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복제약값 상승이나 수술비용에 관한 괴담이 떠도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는 사회 양극화에 기름을 붓는 격이며, 국민의 절대 다수가 누려야 할 삶의 질을 파괴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는 결정적인 고리가 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 농촌 교육에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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