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황규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 제막식이 지난 17일 고창농악전수관 일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고 황규언 선생으로부터 고창농악을 전수받았던 많은 문하생들과 고창농악을 사랑하는 군민들, 각급 기관·사회단체장들이 참석해, 영무장농악의 정통성을 담은 가락과 춤사위로 호남우도농악을 대표하는 고창농악의 모든 가락과 형식을 현재에 되살려 전승시킨 고창농악의 중시조(中始祖) 황규언(1920∼2001)선생의 공적을 기렸으며, 공적비는 고창농악전수관 입구 오른편에 세워졌다.
고창농악은 6·25 전란이후 우리지역 풍물명인들이 타계하면서 고창영장농악의 맥이 끊어질 뻔했다. 그러나 1985년 오거리당산제 제현을 위한 고창농악단이 창설됐는데, 이때 황규언 선생이 초대 상쇠로 추대되어, 단절됐던 우리 농악의 체계를 확립시키고, 전통적인 영장농악의 맥을 지켜나갔다. 그 결과 1991년 전북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94년도에는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그해에 전라북도 예술인 문화상 수상, 고창군민의장인 문화장을 수상했으며, 이후 2년뒤 1996년에 30여년간 단절되었던 우리고창농악의 문굿을 재현했고, 1998년에는 전주 대사습놀이 농악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그리고 1년뒤인 1999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8호 고창농악 상쇠 기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2000년도에도 그동안 단절되었던 우리 고창농악의 풍장굿과 도둑잽이굿을 재현하고, 고창농악이 전북 최초로 단체 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받는데 공헌했다.
이후에도 향년 81세로 작고하기 이전인 2001년까지 이전까지 전국 각 대학생풍물패와 전문 풍물굿 동호인 등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고창농악을 전수시키면서 우리 고창농악의 정체성과 예술의 혼을 승화시키면서 우리농악발전사에 큰 공로를 남겼다.
이러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고창농악보존회(회장 이명훈)와 고(故) 황규언 선생 공적비 추진위원회(위원장 송영래)는 고창군민, 전북 문화예술인, 고창농악 문하생이 있는 전국의 50여 단체 등 300여명의 뜻을 모아 황규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건립했다.
한편 이날 공적비 제막식과 함께 열린 제13회 고창농악문화재 발표회에서는 14개 읍면농악단 및 전국 문하생 300여명의 판굿과 전문사회패 10여 단체의 공연으로 진행했다.
또한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고창하나로마트 2층 문화센터에서는 고창 풍물굿 학술대회가 진행됐으며, 민속학자 김헌선 교수(경기대 국문과) 외 16명의 연구진들이 모여 풍물굿 연구의 진전을 위한 ‘젊은 풍물굿 연구자들의 학술굿판’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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