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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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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용띠생이다. 이 양반이 1928년에 소설 한 편을 발표했는데 그 제목이 <용과 용의 대격전>이다. 내용은 화려한 말잔치로 민중을 속이고 재산을 갈취하는 수구적 관료집단과 그 우두머리를, 정의와 상식 그리고 인간애로 무장한 세력이 연합해서 퇴출시킨다는 것으로서 일종의 혁명소설이다. 이 소설은 동양권의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교과서로 통하고 있고, 백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상당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무정부주의는 가끔 무질서와 혼동해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무질서와 무정부주의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러시아의 걸출한 혁명가 바쿠닌에 의해 개념이 정리된 무정부주의는 기존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질서를 꿈꾼다. 화려한 말장난으로 민중을 속이고 권력만 잡았다 하면 사악한 ‘도둑놈’이 되어버리는 정부조직에 더 이상은 아무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전제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은 말씀이 참 화려하다. 그가 생산한 수많은 어록 가운데 최고를 들자면 아무래도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던 그 ‘말씀’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의 발언은 참으로 묘한 데가 있다. 삼일천하도 아니고 그의 입에서 훌륭한 말씀이 나왔다 하면 바로 그게 아닌데요 하는 식의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발언이 나온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도곡동 사저다 뭐다 등등 온갖 비리가 고구마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자리를 남몰래 슬쩍 돈이나 챙기는 새로운 직종 쯤으로 파악했던 게 아니냐 하는 말까지 나온다. 하긴 그 양반만큼 돈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전 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마지못해 지키면서 자신의 호를 붙인 청계재단이라는 것을 다 만드셨을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 고장 고창에도 문제는 많다. 매우 수상쩍은 문제들이 하나둘 쌓여가고 있다. 시니어타운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라는 둥의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참이고, 장어집이며 흥덕주차장 문제 등등 생각하기조차 불쾌한 의혹들이 차곡차곡 쟁여지고 있으며, 전국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던 성희롱 사건은 끝난 것도 아니고 안 끝난 것도 아닌 채로 미봉되어 있다.
본인들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 간에 밀실 합의를 보았으니 끝났다 하고, 서명이나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된다면, 권력을 가진 자가 상황 종료됐다고 선언하는 것으로써 끝나는 식의 논리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문제도 끝난 것이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조폭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아전인수식 논리일 뿐이다.
의회가 집행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항간의 소문도 고약하다. 실제로 집행부와 그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의 관계가 너무 좋다는 물증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날마다 아웅다웅 싸우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보다 나쁜 것은 꼼꼼히 따져보는 과정도 없이 일사천리로 집행부의 사업계획을 승인 내지 사후 추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회의 존재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의원들은 섭섭하다고 할까?
2012년은 용의 해이다. 용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용맹한 동물 열두 종류 중에서 좋은 점만을 골라 만들어진 우리 마음속의 영웅이다. 이 영웅은 하늘이면 하늘, 땅속이면 땅속, 불타는 지옥이면 지옥, 바다면 바다 등등 못 가는 데가 없고 못하는 일이 없다. 이 전지전능한 영웅이 행차하는 2012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각오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새로워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 감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할 말은 해서 거짓말쟁이들을, 말빨만 화려한 사기꾼들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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