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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화 (고창지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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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말은 동음치면 석교리 동촌(洞村) 남단 옛 서창(西倉)이 있었던 창포(倉浦)로 창촌(倉村)이라 일컫는 마을이다.
1800년대 초까지 조수가 드나들어 구수내까지 배가 내왕하여 세미(稅米)를 보관하였다가 서울 마포로 운반하던 무장고을의 해창(海倉)이 있었던 곳이다. 이 고장 토산물을 제물포를 위시하여 서해안 각 포구에 운송하던 요충지였다. 1912년 홍농면의 단덕 울진포를 막고 1922년 칠곡리 언덕을 막은 이후에는 이 근동이 옥토(沃土)가 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창말은 세미를 보관하던 서창이 있어 동학농민군의 화약을 만들었던 창터가 있었다 하여 애초에는 창두(창머리)로 부르다가 개(浦)를 끼면서 창말로 고쳐 부른 곳이다.
지금은 벽해상전(碧海桑田)되어 언제 창포였느냐고 되묻는 일화가 넘쳐난 곳이기도 하지만 가히 새옹지마의 표본이 된 곳이다. 기념물적인 의미로 서창, 해창, 창포, 창촌으로 너절하게 그 지명의 호칭이 바뀐 곳이다. 아마 한 마을의 이름이 이와 같이 그 별칭이 화려한 지명도 여간 드물 것으로 여겨진다. 아! 화려했던 옛날이여. 그 이름 창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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