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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장 유점동 (전 고창전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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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은 정절을 목숨같이 여겼다. 정절을 소홀히 하면, 모든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임은 물론 칠거지악의 대상자가 된다. 그야말로 정절은 신성한 것이요, 부덕(婦德)의 근간이었다. 옛날과 달리 요즘 세상의 정절은 낡은 시대의 잔재로 남아, 현실을 모르는 낙후된 사고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중앙일보 보도내용에, 한 외국회사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외도비율이 34%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란다. 가정의 중요성과 가족간의 유대가 남다른 우리의 보수적 가치가 언제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변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남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외도가 이제는 여자 쪽으로 기울어져, 대등한 수준을 넘어 역전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하니 더욱 걱정스럽다. 문제는 남자의 외도가 일회성 유희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여자의 외도는 정서적인 면이 작용하여 가정의 파탄으로 발전될 소지가 다분하다는데 있다.
부정에 빠진 일부 주부들의 변(辯)인즉슨, ‘남자도 하는데’ 하는 맞불의식에서부터,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여자로 대해준다는 새로운 자아의 발견, 일에 빠진 남편의 무관심, 출산과 육아 그리고 재정적 스트레스에서 오는 우울감,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는 공허들이라 하는바, 이러한 이유들이 결국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이므로, 사전에 대처할 소지가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뢰와 환상이 깨지고,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나며, 하는 짓마다 밉게 보이는 감정상의 표출이거나, 성적불만에 따른 섹스리스라면 백약이 무효이다.
세상이 이러하니 어쩌겠는가. 미국작가 ‘리저 러스’의 소설 <네 아내를 믿지 말라>의 내용도 ‘네 아내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비장(?)한 메시지가 담겨있으며, 옛말에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명언이 있고 보면,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리라.
그러나 배우자의 배신을 알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가슴은 쥐어뜯듯 아프고 삶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인지한 순간부터 육신과 정신의 파괴를 몰고 오는 진창으로 변한다. 외도를 행하는 당사자라 해서 마음 편할리 없다. 외줄을 타는 듯 아슬아슬하고 말초적인 즐거움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의 가책이라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통계 숫자를 봐도 86%가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니 불장난 자체가 행복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당사자만 나무랄 일이 아니고, 배우자의 역할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여자의 정서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감동을 받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한다. 머리 스타일이 바뀐 줄도 모르고 아내의 생일조차 까먹는 남편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되지 않는다. 지금도 ‘자가용은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덜떨어진 소리를 하는 남편들이 있다면 한심한 일이다.
페미니즘(feminism)의 영향에 의해 여성들의 자의식은 굉장히 높아졌다. 상황이 변해가는데 부정적 패턴을 알아채지 못한 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불행의 사태는 불문가지이다. 진정을 다해서 사랑하고, 지극한 관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비난을 배제한 건전한 대화야말로 가정을 지키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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