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기사제보구독신청기사쓰기 | 원격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기사제보
구독신청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불편신고
제휴안내
기관,단체보도자료
 
뉴스 > 살며 생각하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삼한시대 도작문화의 중심 동림저수지
이병열 기자 / 입력 : 2012년 03월 19일(월) 11:00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이병열 
(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말로만 들었던 저수지가 있다. 아버지가 줄포면사무소 지적계장으로 계실 때 줄포면 일대로 동림저수지의 농수로를 기획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동림저수지를 수도 없이 돌아다니셨다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주 동림저수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어릴 때 동네 형들을 따라 동림저수지를 가본 적이 있다. 처음 본 동림저수지는 너무 넓어 꼭 바다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긴 성인이 된 지금 봐도 넓은 호수이다.

이 일대의 역사를 안 뒤부터 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눌제를 건너 백제인들을 무수히 죽인 나당군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일어나곤 한다. 한국과 일본이 상생에서 갈등의 문을 연 사건이 바로 백제부흥전쟁 최후의 격전인 백강전쟁이다.

이 백강전쟁이 바로 부안 주류성(우금산성)과 중방 일대에서 벌어졌다. 백제부흥군은 4년간 백제의 아우인 왜의 지원을 받으며 줄기차게 조국부흥전쟁을 수행하였다. 이 백제부흥전쟁을 지탱해준 곳이 비옥한 농경지가 있었던 고창이었고, 그 중심이 동림저수지 일대였을 것이다. 백제는 5방 39군 103현이 있었는데, 나당군에 의해 공주와 부여 일대의 백제 고토는 초토화 되었지만 전라도 남부지역은 건제하였다. 특히 흥덕을 중심으로 한 상칠현은 백제의 중방인 고사부리의 속현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한 지역이었다.


동림저수지 일대는 삼한시대부터 한국도작문화의 중심지
동림저수지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동림저수지 아래 4km에 있는 눌제(訥堤)를 통해 추측은 가능하다. 눌제는 익산의 황등제(黃登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더불어 호남 삼호(三湖)의 하나였다. 눌제는 1873년에 폐지되었으나 당시 제방의 길이는 1.5㎞, 둘레는 16㎞였다고 하니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과 성내면 일대가 된다. 눌제는 신라의 문무왕이 부안의 주류성에 있던 백제부흥군과 최후의 전쟁(663년 8월 17일~9월 7일)을 하기 위해 5만의 군사로 건넜던 제방이었다. 백제의 부흥군이 인근의 부안 주류성에서 항거하며 버틴 것도 팔왕천 주변의 비옥한 농경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리저수지의 성내면에는 군정청터, 군창터, 깃대바위, 솟대청터, 마릿등(말훈련장), 마부간, 배들잇재 등의 옛 지명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옛 동림저수지 축조 이전의 역사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눌제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의 개념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닷물은 동진강을 따라 고창군까지 밀고 올라왔기 때문에, 이 지역은 늘 염해를 입었다. 눌제는 고부천 주변의 농경지를 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눌제 배후의 비옥한 농경지인 고창의 흥덕과 성내지역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일제강점기에 눌제와 고부천 하류 팔왕에 갑문을 설치한 것이다. 이 지역에 튼튼한 갑문을 설치함으로써 동진강 하류를 거쳐 유입하는 밀물을 차단하여 토지이용을 보다 안정되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동진강하류 간척지의 관개시설
동림저수지의 축조연대의 기록은 흥덕면 석우리 동림저수지 제방 입구에 있는 흥덕제 기념비라는 비석에 있다. 비의 규모는 192×115×28cm로서 약간 다듬은 화강암제의 자연석이다. 비의 앞면 중앙을 110×61cm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판 다음 ‘興德堤’라 음각하였으며 뒷면에도 동일한 형태로 판 후 ‘大正六年六月 技工, 大正七年十一月 竣工’이라고 새겨 있다. 이는 1917년 6월에 기공식을 하고, 1918년 7월 11일에 준공되었다는 말이다.

흥덕제의 이름은 조선총독이 명명한 것이라 한다. 동림저수지는 관개면적 1674㏊에 유당 면적 4420㏊, 저수량 995만㎥으로 도내 최대의 농업용 저수지이다. 저수지 축조는 고창군 흥덕·성내, 정읍군 고부·영원, 부안군 건선(줄포)·주산·동진·백산·부령(부안) 등지를 몽리구역에 둔 고부수리조합(古阜水利組合)이 하였다. 고부수리조합은 고부평야의 홍수와 가뭄을 대비해 1916년에 설립되었으며, 논경지 3,600여 정보에 필요한 관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고창군의 흥덕면과 성내면에 걸치는 흥덕제(興德堤)를 축조하였다. 고부수리조합이 고부천 상류에 축조한 흥덕제는 하천 양안에 형성된 충적지와 하구의 간척농지에 관개수를 제공하고 있다. 고부천이 동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일대의 간척지도 흥덕제에 의해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완공된 대규모의 동림저수지는 전북 연해지역의 간척지 개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고창의 동북부 성내와 흥덕은 삼한시대 호남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작(稻作)지대였다. 그리고 고창사람들은 갯골이 충분히 발달한 고부천(팔왕천)을 따라 성내와 흥덕 곳곳을 오가며 경제활동을 했을 것이다. 동림저수지의 역사는 한국의 농경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의 증거이다. 

이병열 기자  
- Copyrights ⓒ주간해피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고창군, 일자리 연계형 주택 공모 선정…“신활력산단 200세..
고창 A초등 교사 전원, 교장 갑질 주장..
고창 성송면 석산개발…고창군의 특혜·위법 행정 있었다..
지지부진 ‘노을대교’ 예산증액 가시화..
윤준병 의원, 정읍시의원 해당행위·비위 조사결과 발표..
고창 명사십리 해변에 대규모 해양관광지 들어선다..
위탁업체 노동자 ·노조, “정읍시 생활쓰레기 수거 직영하라”..
고창 맨손어업인들 “어업권을 보장하라”..
영광에 이어 고창 한빛원전 주민공청회도 무산..
이복형 정읍시의원, 더불어민주당 탈당계 제출..
최신뉴스
이학수 정읍시장, 10월31일 대법원 최종 판결..  
고창군의회, 임종훈 예결위원장·박성만 행감위원장 선출..  
고창군, 일자리 연계형 주택 공모 선정…“신활력산단 20..  
‘고창 문수사 대웅전‘ 국가보물 지정서 전달..  
위탁업체 노동자 ·노조, “정읍시 생활쓰레기 수거 직영하..  
윤준병 의원, 정읍시의원 해당행위·비위 조사결과 발표..  
고창 성송면 석산개발…고창군의 특혜·위법 행정 있었다..  
지지부진 ‘노을대교’ 예산증액 가시화..  
고창 명사십리 해변에 대규모 해양관광지 들어선다..  
고창 A초등 교사 전원, 교장 갑질 주장..  
물난리에 회식한 국회의원·도의원·도의회기자단..  
고창 맨손어업인들 “어업권을 보장하라”..  
이복형 정읍시의원, 더불어민주당 탈당계 제출..  
영광에 이어 고창 한빛원전 주민공청회도 무산..  
더불어민주당, 정읍시의원 해당행위 및 비위의혹 조사 결정..  
편집규약 윤리강령 윤리강령 실천요강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주간해피데이 / 사업자등록번호: 404-81-36465/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월곡로 38번지 상원빌딩 3층 / 발행인.편집인: 박성학
mail: hdg0052@naver.com / Tel: 063- 561-0051~2 / Fax : 063-561-5563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244 | 등록연월일: 2008. 5. 24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