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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장 유점동 (전 고창전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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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회자되는 유머가 있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자식자랑이 한창인데, “이번에 내 아들이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세 개나 받았어” “우리 딸은 우주를 열네번이나 다녀온걸 알고 있나?” “내 아들은 변호사인데 일 년 수입이 삼천만 달러야”, 신이 나서 읊어대는 거짓말들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한 친구의 한마디에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내 아들은 정치인이야!” 정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정치인은 거짓말쟁이로 통한다. 바야흐로 국회의원 선거가 불이 붙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출사표를 던진 면면들을 살펴보면 가히 가관이다. 형무소를 제집 드나들 듯한 범죄자는 약과고, 남의 불행이 제 행복이라 여기는 부패 졸부, 표만 얻으면 된다며 포플리즘에 목매다는 자, 실패한 이념논쟁에 매달리는 자, 지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 등, 3등 인생들의 전시장 같다.
또다른 변수로 급변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번 선거의 최대 화두는 복지였다. 복지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됨이 주지의 사실임에도, 어떻게 재원을 마련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거나 황당한 이야기를 주절거리면서 얼버무린다.
대안이 없는 복지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더구나 고령사회의 고통 속에서 하루를 천년같이 살고 있는 노인들의 복지는 완전 열 밖이다. 하기야 모두들 잊고 있겠으나, 몇 년 전에 젊은 표를 얻기 위해서 ‘노인들은 선거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한 사람들이, 늙지도 않고(?) 활동하는 정치세계에서, 노인복지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올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왠지 씁쓸하다. 지엽적인 공약은 있어도 근본적인 대책, 최소한의 생활유지가 가능한 현실적 대책을 담은 공약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철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좁은 땅덩어리 내에서의 지역주의 병폐다. 백제와 신라가 망한지 천몇 백 년이 흘렀는데, 어느 지역은 무슨 당이라는 공식이 통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서로 왕래하면서 어우러져 살았었다. 이러한 정서가 깨져버린 원인이라면 순전히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의식적으로 부추겨서 이용했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 거짓말이요,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불의도 선의가 되며,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속으로 혀를 날름거리고, 사회적 이슈가 나타나면 야누스의 얼굴이 되어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후안무치의 정치인이 있는 한, 정치에서 정도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고 미래를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 희망의 정치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유권자 자신 뿐이다.
그래서 선거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최선이 안보이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선거에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딱 한가지다. 지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이념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자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할 만 한 인성적 인물에게 투표해야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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