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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발견하는 재미만한 게 또 있으랴
김수복(르포 기자 / 입력 : 2012년 04월 23일(월) 11:40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영화는 대체로 재미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며 극장을 찾는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거 정국은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다. 선거는 등장인물도 굉장히 많고, 제작비는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히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영화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지난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저마다 한두 마디씩 인상비평을 내놓기 마련이다. 이번의 선거를 영화에 비유해서 짧은 평을 해보자면, 비열과 비겁의 대결이었다. 여당은 비열했고 야당은 비겁했다.

여당쪽 사람들은 대중의 심리를 잘 안다. 대중은 때로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속고 싶어한다. 삶이 너무 고달파서, 환상에라도 자신을 맡기고자 하는 게대중의 심리다. 여당쪽 사람들은 이것을 아주 잘 이용한다. 그래서 이명박류의 비열한 거짓말 행진을 계속 이어가는, 어떻게 보면 아주 손쉬운 선거를 치렀다.

반면에 야당은 아주 손쉬울 수 있었던 선거를 아주 어렵게 치러내는 미련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말했다. “저쪽은 박근혜 혼자서 움직이지만, 우리는 유명인사들이 군단으로 움직인다”고.

유명인사. 그랬다. 야당은 초장부터 이 프레임에 꽉 잡혀 있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인사들을 좌청룡 우백호 식으로 좌우에 배치하면, 대중이 나도 좋아해줄 것이라는 믿음. 사춘기 청소년들이 아지랑이를 보며 꿈을 꿀 때나 가능할 법한 이런 믿음에 눈이 멀어,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유명인사의 북콘서트를 정치인이 개최해서 함께 단상에 올라가는, 이만하면 나도 근사해보이지 않나요, 식의 몰염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당선이나 되고 보자는 그 얄팍한 속내를 대중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함께 즐기기는 하지만 표를줄 생각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번 4·11총선 영화의 감독이나 주연급 배우들은 태반이 비열하거나 비겁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캐스팅에 실패한 대표적인 선거영화로 기록될 만도 하다. 그렇다고 감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감독이나 주연 혹은 조연 배우만 있는 게 아니다. 슬쩍 한 번 지나가는 것으로 생명을 다하는 단역도 있고, 관객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스텝들도 무수하다. 그 많은 스텝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소문나지 않게 인간의 품성을 아름답게 지킨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여성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전략 기획통으로 꼽히는 박선숙, 그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정치를 한 번 더 다시 생각해보는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나중에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당선이나 되고 보자는 풍토 속에서, 박선숙은 과감하게 출마를 포기했다. 그가 지닌 경력과 당내 역학관계로 볼 때 충분히 공천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그는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당무에만 전념했다. 그가 맡은 당무는 야권연대와 전략 홍보였다. 야권연대란 결과적으로 동료 당원들의 출마의지를 포기하게 하는 일종의 악역이다.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이 어떻게 지역구 출마를 희망할 수 있겠느냐는 게 그가 내놓은 출마포기의 변이었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비례의원이라도 신청했을 법하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조차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대단한 심성이다. 악에 악을 써가며 어제까지의 동료를 저주하고 당적을 미련없이 바꿔버리는 장삼이사들과는 그 차원이 너무도 아득해서, 그저 이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긴 이런 발견의 재미조차 없다면 무슨 기운으로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랴.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일러 “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속에는 굉장한 철심이 들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이런 정치인이 열 명만 있다면, 아니 다섯 명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도 대단히 쿨하고 멋지고 희망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문패를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가던 길을 끝까지 가야 새 길이 보인다>.
김수복(르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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